광고 속 '미장센'을 만드는 사람
수많은 직업 중 내 자리는 어디에…' 고뇌하고 있을 여러분을 위해, 컴퍼니 타임스가 "세상의 이런 '일'도"를 연재합니다. 들어는 봤는데 무슨 일 하는지 잘 모르는 직업, '세상에 이런 일도 있었나' 싶은 이색 직업, 영화·드라마에서는 멋지게 나오는데 실상은 어떤지 궁금한 직업 등 다양한 '일자리'를 다뤄봅니다.
우리는 미장센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박진아 아트디렉터는 광고아트디렉터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미장센(mise en scene)’은 연극·영화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을 말한다. 광고에서 미장센은 ‘화면 속 인물을 제외한 배경이나 소품에 대한 미적 기준’을 뜻한다. 광고아트디렉터는 이 미장센을 만진다.
박 디렉터는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와 LG 올레드 TV, 네이버 나우, 이케아코리아, CJ제일제당의 햇반 등 굵직한 브랜드 TV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는 광고아트디렉터로 자리 잡고 한 팀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광고아트디렉터’란 일에 대해 물었다.
◇ “광고아트디렉터, ‘글’을 ‘이미지’로 풀어내는 사람”
광고와 관련된 직종으로는 광고기획자,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광고 프로듀서, CF 감독, 미디어플래너, 이벤트 PD, 광고사진가, 온라인광고 전문가 등이 있다. 이 중 아트디렉터는 글로 쓴 기획안을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낸다. 현장에서 일하는 ‘실행팀’이라 할 수 있다.
“화면 이미지를 예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미장센적인 요소라고 이야기하는데, 광고아트디렉터는 한 화면에 들어오는 모든 배경을 만지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합니다.”
한 편의 광고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광고주가 제작을 의뢰하면 대행사가 기획안을 내고 콘티를 짠다. 이를 바탕으로 프로덕션 감독과 PD들이 스토리를 구성한다. 콘티가 그려지면, 의상팀과 아트팀 등 실무팀이 나선다. 헤드급들이 모여 콘셉트 회의를 하면 아트디렉터의 일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콘티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하면서 소품이나 세팅 플랜을 짭니다. 준비된 것들을 세팅하고 촬영한 뒤 철수하는 것까지 책임져요. 이후 편집본을 바탕으로 한, 색 보정이나 음악 작업 등은 또 다른 분야고요.”
콘셉트 회의를 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레퍼런스(참고자료)를 찾는 일. 의외로 이는 매우 중요하다. 이미지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결과가 기획 의도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이미지로 커뮤니케이션해요. 처음 레퍼런스를 찾을 때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준비를 하면서도 답안지처럼 갖고 갈 수 있어요. 이 단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 “트렌디한 감각 중요… 인내심은 필수”
광고아트디렉터의 업무 강도는 꽤 센 편이다. 돌발 일정도 많이 생긴다. 요즘 직장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워라밸’과는 조금 거리가 먼 직업이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가 없어요. 내 스케줄을 내가 모르거든요. 워낙에 변수가 많은 직종이라 갑자기 회의가 생기거나 야근을 하거나 자료를 만들어야하는 일들이 종종 생겨요.”
도제식 환경이라 사람 스트레스도 크다. 헤드급이 되기 전까진 보수도 낮은 편이다. 박 디렉터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를 잘 풀어내는 사람이 광고아트디렉터로서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어떤 분야보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이 직업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실력은 그 다음 문제고요. 한 프로젝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요.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고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죠. 날것의 말들을 무던하게 버티는 친구들이 오래가더라고요.”
영화와 달리 광고는 트렌드가 중요해,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감각이 떨어지면 그대로 도태되는 게 업계 현실이다.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을 때도 감이 있는 사람이 일에 대한 습득도 빠른 것 같아요. 똑같이 흰색 배경을 찾아도 각자의 센스에 따라 역량 차이가 나더라고요. 트렌드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금방 도태되기 때문에 늘 유행과 이슈를 공부해야 합니다.”
◇ “직업의 매력? 가장 새롭고 트렌디한 걸 먼저 접할 수 있단 점”
조형예술과를 나온 박 디렉터는 대학교 때 영상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영화와 광고 관련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돼 광고아트디렉터가 됐다. 현재 일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광고아트디렉터는 광고회사에 취업을 해 시작할 수 있지만, 박 디렉터처럼 아르바이트를 한 인연이 연결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현장을 핸들링하는 경험치가 쌓이고 나니까 직업에 대한 집중도는 더 올라가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한 만족감이 있죠. 프로젝트가 크면 클수록 촬영장은 힘들지만, 광고가 예쁘게 나오면 거기서 오는 뿌듯함이 커요.”
광고는 도전하고 실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많기 때문에, 변화와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맞는다. 가장 유행을 빨리 읽을 수 있는 점 또한 광고아트디렉터란 직업이 가진 매력이다.
“매 순간, 매 프로젝트가 모두 다른 환경이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구나 소품 등 새로운 예쁜 것들이 나오면 가장 먼저 사용해볼 수 있고 만져볼 수도 있죠. 유행에 빨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광고다 보니, 그런 것들을 제일 먼저 손대볼 수 있는 재미가 커요. 우리는 항상 최신의, 트렌디한 것에 대한 이미지를 좇죠. 아웃풋이 예뻐야 하니까 끊임없이 예쁜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에요. 분명히 매력이 충분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