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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명의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상생하는 91년생 CEO 이야기

조회수 2020. 10. 7. 08: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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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종합예술 에이전시 디스에이블드 김현일 대표

판매되는 신발 수만큼 제3세계 어린 아이들에게 신발을 기부하겠다며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불렸던 탐스를 아시나요? 한때는 획기적인 에코 마케팅 방식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경영난을 겪으며 채권단 공동관리 절차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이 탐스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제품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뛰어나지 않음을 꼽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 걸까요? 소위 '좋은 일'을 한다는 회사들이 최근에는 메시지와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이 매출, 브랜드 등 기업 전반에 그리 도움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일단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본질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마리몬드, 마르코로호 같은 브랜드가 있겠죠.


그리고 EO 에디터의 눈에는 이 회사도 그 대열에 합류할 만한 자격이 충분해 보입니다. 발달장애 종합예술 에이전시 디스에이블드의 대표 김현일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디스에이블드의 대표 김현일입니다. 디스에이블드는 39명의 발달장애 예술가분들과 함께하고 있는 발달장애 종합예술 에이전시입니다. 작가님들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희는 작품 소스를 활용해서 리디자인 상품을 개발하고 있고요. 전시·공연 기획, 인식 개선 교육 등도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관공서에서 좋게 봐주셔서 B2B로 구매를 많이 해주시고 있고요. 가치에 공감해 주시는 연예인, 인플루언서분들이 SNS에 올려주셔서 B2C 고객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투자 라운드는 시리즈 A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정말 열심히 놀다가 창업을 결심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가면 다 노는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으니까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저만 놀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다 열심히 공부해서 평균 1.1 학점을 받았습니다.


그때 진짜 매일 놀았어요. 술 먹고, 게임하고... 1년을 도망 다니면서 놀다가 학교에 억지로 복학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공부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틸까?'라는 생각만 들고요.


그때 왜 그렇게 방황했는지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 나는 왜 이러고 살까?'라고 생각하면서 일주일 내내 A4 용지에 이것저것 써봤어요. 다 쓴 내용을 하나로 합치고 나서 '뭔가를 만들고 싶다. 그럼 난 창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디스에이블드 이전에는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했었나요?


뭘로 창업을 할까 하다가 그냥 내 주위에 있는 것들로 한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제가 밖에서 더러운 화장실 가는 걸 진짜 싫어하는데요. 그 점에서 착안해서 카페 화장실을 이용하는 대신, 발급받은 쿠폰으로 그 카페에서 뭔가를 사 먹고 나갈 수 있게끔 연동하는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당시에 상을 많이 받았었는데요. 그런데 조급한 마음에 제가 역량 밖의 일에 욕심을 냈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코드가 꼬여버린 거예요. 여기까지인가 보다 싶어서 딱 끝냈죠. 그 애플리케이션 자체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었거든요. 다만, 무언가 다시 또 해야 하는데, 하고 싶었던 일을 더는 못 하게 되는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Q. 디스에이블드는 어떻게 창업하게 되신 건가요?


저는 할 게 없으면 또 놉니다. 하루는 대학로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덥길래 전시회를 한다고 쓰여 있는 갤러리에 잠깐 들어갔었어요. 거기서 본 동물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 갑자기 매료된 겁니다.


언뜻 봐선 어울리지 않는 동물들과 배경,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색감이 너무 조화롭더라고요. 동물들이 모두 친구처럼 어우러진 모습에 마음이 정말 편해지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전시회가 발달장애 예술가분들의 작품 전시회였습니다. 그때 '이 작품들로 뭔가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제품에 이 그림들을 입혀서 판매하면 이분들도 유명해지고, 지속적으로 예술 활동도 하실 수 있고. 물론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고'라고 생각하며 디스에이블드를 시작했어요.

Q. 초기에는 무일푼 상태였을 텐데요. 어떻게 작가님들을 컨택하고, 설득하셨나요?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발달장애자분들 중 일부에게서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이 보이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분도 있고, 음악에 재능이 있는 분도 있어요. 저는 미술에 꽂혔으니까 그분들이 장애인미술대전 같은 데 분명히 나올 거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모든 대회에 다 갔어요.


그리고는 아침부터 특정 작품 앞에서 작가님이 오시길 기다렸어요. 조금 무모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상을 주는 날 작품 앞에서 꽃을 받고 사진을 찍으시는 작가님과 작가님의 어머님을 뵐 수 있었어요. 그때 틈을 놓치지 않고 꼭 작가님과 일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처음 작가님을 섭외하기까지 한 3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정말 큰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많거든요. 작가님의 어머니가 딸이 발달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더 슬펐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재능이 있으면 그걸 키워주고 싶은데, 잘 도와줄 수 없으니까 자책을 더 많이 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제안을 밀어내는 분들이 되게 많으셨어요. 그래도 함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끝에 작가님 두 분이 저희를 믿고 선택해 주신 덕에 지금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Q. 우여곡절 끝에 작가님들을 섭외했지만, 자금이나 제품 생산 등 여러 측면에서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가진 돈이 없었는데, 여기에 올인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도 없었어요. 근데 못 하면 진짜 병이라도 날 것 같아서 저희 어머니에게 가서 "엄마, 나 이거 진짜 꼭 하고 싶은데,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내가 진짜 성공해서 꼭 갚을게"라며 부탁드렸어요. 진짜 감사하게도 어머니가 자금을 빌려주셨는데, 아마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망하면 그냥 취직하겠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따로 창업을 했다가 그때 조금 방황을 하고 있던, 능력은 뛰어났던 친구를 6개월만 같이 해보자고 설득했습니다. 그 친구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생활용품에 그림을 입히는 거였어요. 당시에 저는 재고 개념이 아예 없어서 좋은 그림을 입혔으니 열심히 팔면 다 팔리지 않을까 싶어서 갖고 있던 돈 전부를 다 쏟아부어서 핸드폰 케이스를 찍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종의 핸드폰을 진짜 많이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저희는 기종별로 균등한 개수로 케이스를 찍어서 낭패를 봤죠. 핸드폰 케이스는 아직도 재고가 남아 있고, 노트북 케이스도 2019년 하반기가 되어서야 다 팔았습니다. 그때의 실수를 교훈 삼아 지금은 모든 제품을 주문 생산으로 만들고 있어요.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자. 재고를 남기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접근하고 있죠.

Q. 초기의 부침을 이겨낸 후에 디스에이블드는 어떻게 성장해가고 있나요?


전시회를 할 때마다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희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고 가신 기업 관계자분이 "그림을 우리 회사에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한 번씩 바꿔줄 수 있어요?"라고 하셔서 유휴공간에 그림을 걸어드리고 3개월마다 교체해드리는 정기 렌탈 서비스가 생겼어요.


작년에 했던 지방 전시는 처음 시도하는 거라 관객분들이 많이 안 오실 줄 알았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이 "저희 디스에이블드 팬이라서 왔어요"라면서 응원도 해주셨고요.


팀 규모로 따지면 현재 전체 직원 수가 16명 정도인데요. 그중 7명은 발달장애 예술가분들이에요.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같이 활동하고 있죠.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친구들과도 함께 일하고 있는데, 제가 큰 능력이 없어서 '당신이 나보다 잘하니까 해봐요.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많이 맡겨요. 심지어 이력서를 안 내고 "너희 회사는 이래서 안 돼. 내가 가서 다 뜯어고치고 싶어"라면서 들어온 친구도 있을 정도예요.


근데 믿고 맡기는 만큼 그 사람들이 더 좋은 결과를 끌어내더라고요. 그 속에서 제가 하는 역할은 그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딘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는 과정에서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친구들이 알아서 치고받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면서 만들어나가는 편이고요.

Q. 그 방향에 맞추어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디스에이블드는 실제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요?


저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놀랐던 게 많은 사람이 작가님들의 작품을 전부 무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작가 작품 써서 사람들이 많이 보잖아. 그럼 좋은 거 아니야? 당연히 공짜로 써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무단으로 사용하시거나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이유를 못 찾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반면, 저희는 절대 무료로 작업하지 않습니다. 작가님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끔 그분들이 가진 능력에 걸맞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잘 살 수 있는 일을 찾아드려요. 저희 자체적으로도 레드닷, 스파크, 케이디자인, iF 같은 국제 공모전에서 수십 번씩 우승했던 디자인 팀과 함께 최고의 디자인을 뽑아내고 있고요.


그리고 공식적으로 소개할 때는 여전히 '발달장애 종합예술 에이전시'라고 소개하지만, 2019년부터 전시를 할 때는 발달장애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을 뜻하는 'heart'에 '-ism'을 붙여서 발달장애 예술가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티즘(Heartism)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서 사용 중이에요. 감사하게도 몇몇 유명한 예술가, 평론가분들이 이 단어가 상용화되게끔 노력해주고 계세요.


모든 게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실천이지만, 그렇다고 제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고, 기업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 디스에이블드는 소셜 벤처가 아니라 일반 예술가 에이전시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분들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그분들의 재능을 상품화해서 수익을 내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의 궁극적인 바람은 그저 좋은 디자인을 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Q. 회사 생활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바로 창업의 세계로 뛰어드셨잖아요. 다른 사람에게도 창업하기를 추천하시나요?


말씀하신 대로 회사에 한 번도 안 다녀봐서 창업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몰라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는데요. 저는 한 번쯤 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인 제 또래에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을 정말 많이 해볼 수 있거든요. 제가 대표가 되어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은 것 같고요.


물론, 주말없이 일하고, 창업을 한 이후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보니 많이 피곤하긴 합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니까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그 속에서 너무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발달장애 종합예술 에이전시 디스에이블드를 만들어 39명의 예술가들과 함께하고 있는 김현일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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