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유재명, 이 남자의 목소리는 왠지 믿음이 간다

조회수 2020. 10. 20.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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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사진 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스포일러가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본문 중에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피해가길 부탁드립니다.
유재명

부산 사투리의 억양을 완전히 지워내지 않은 말투. 유재명의 목소리에는 어떤 기운이 있다. 상대방을 집중시키게 만든다. 단순히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목소리는 말하는 태도와 단어의 선택과도 연계된다. 진중한 눈빛으로 세심하게 고른 단어를 통해 듣는 그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문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 그와 마주앉아 <소리도 없이>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창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의 기운이 당신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소리도 없이>는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근면성실하고 전문적으로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이 유괴된 아이 초희(문승아)를 떠맡게 생기는 일을 그린 영화다.

<소리도 없이>

-완성된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촬영한 지 한 1년 좀 넘었다. 많이 놀랐다. 색감이 그렇게 예쁠 줄 몰랐다. ‘아… 우리 영화가 이런 영화였구나’하면서 보게 됐다. 아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면서 3번에 나누어 영화를 봤는데 계속 보고 싶어지더라. 


-아기와 함께 집에 있었다고 하니까 궁금해진다. 코로나19 시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

=나만 다니는 산책길이 있다. 어쨌든 나가고 싶으니까 (웃음)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서 나간다. 오늘도 새벽에 마스크 끼고 다녀왔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 다들 마찬가지일 텐데 나도 똑같다.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시나리오에서 창복이라는 캐릭터를 볼 때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나.

=보통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보게 되는데 <소리도 없이> 시나리오는 작품 전체를 많이 본 것 같다. 낯설었고, 그 낯설다는 게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표현, 이런 언어를 쓸 수 있구나… 지문이 많은 시나리오였는데 지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게 피곤하지 않고 재미가 있었다. 보통 영상화를 전제에 두고 시나리오를 보게 되는데 시나리오 자체만으로도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있었다. 글을 읽는 재미가 많이 컸다. 

-홍의정 감독이 각본까지 쓴 건가. 

=그렇다. 본격적으로 창복이라는 인물에 접근하면서는 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역시 경계에 있는 인물이라고 봤다. 창복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친근함, 편안함, 그리고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어떤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들. 

-<소리도 없이>에 창복의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리를 저는 모습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의 과거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보통 전사(前事)라고 하지 않나. 감독님과의 미팅을 통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창복의 공간이 등장하는 버전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스포일러는 아니니까 말을 하자면 노모를 모시고 있는 캐릭터라는 설정이 있었다. 

-그렇다면 범죄 조직의 맨 밑바닥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다리를 저는 것에 대해서는 옛날에 축구 선수를 하다가 (웃음) 다리를 다쳤다라는 식으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유머스럽게 접근한 적도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사실은… 그 인물들에게 전사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과거를 통해 인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배우는 과거를 열심히 분석해서 합리적인 어떤 접근으로 캐릭터를 만든다. 어느 날 감독님과 얘기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창복과 태인의 관계도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다. 태인과의 관계는 뭔가? 

-영화에서 그 관계에 대한 설명이 안 나온다. 

=그렇다. 안 나온다. 창복이 태인을 거둬 키웠을 수도 있고, 일을 부려먹기 위해 데려왔다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회개하면서 지금의 좋은 사람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오면 <소리도 없이>는 현재 시점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현재의 선택, 집중 그것들이 중심이다 보니까 복잡한 생각을 하지 말자고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다. 

-이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라는 했던 걸 봤다.

=직업병이다. 일종의. 

-영화를 보고 난 후, 다리를 저는 설정을 직접 제안한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건 아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게 말투였다. 유재명의 캐릭터들은 경상도 사투리가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에서는 충청도 말투가 들린다.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어른들 얘기가 나왔다. 감독님 고향이 아마 충청도쪽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어른들을 떠올려보면 자분자분하게 급하지 않게 흥분하지 않고 비슷한 뉘앙스로 무뚝뚝하게 계속 말씀을 하신다. 이걸 바탕으로 내가 만들어낸 뉘앙스는 규칙적인 리듬이 있는 것이다. 아까 얘기한 전사가 있어서 그 뉘앙스들을 신념 어리게, 절실하게 하는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나오는 말들, 익숙한 말들, 그런 것들을 고민했다. 

-캐릭터의 의상도 특이하다. 관여한 부분이 있나.

=어떻게 현실감을 줄 건가 고민했다. 그러면서 또 너무 사실적이고 재미가 없으면 영화적 미장센이 담보가 안 된다. 그러면서도 컬러풀한, 그러면서도 허름한 옷을 찾았다.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 서고 연출도 많이 했다는 이력이 떠올라 자꾸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디테일한 부분이 궁금해진다.

=경험이 많은 배우라고 하더라도 결국엔 감독의 세계관이 제일 중요하다.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의 첫 작업(장편영화 데뷔작)이라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셨다. 많은 부분에서 욕심이 나기도 했을 거다. 그것들을 절제하는 방법도 영화를 통해서 습득이 된다.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 속 장면에 대해 얘기해보자. 초희의 몸값을 받으러 간 창복이 긴장을 떨치기 위해 담배를 피는 모습이 기억난다. 참고로 금연 1년차인데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금연상담전화 1544-9030) 

=(웃음) 집중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신을 촬영할 때가 기억이 난다. (직접 연기를 해 보이며) 이렇게 몸을 뒤로 숨겨서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직감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그렇게 하자라고 계산한 건 아닌 것 같고.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그 장면에서 (몸값을 전달하는 누군가와) 통화할 때 무슨 축산물 간판 앞이라고 하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했다. 집중했던 게 그런 디테일로 나왔다. 

*경고!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시퀀스 이후 창복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조금 놀랐다. 유재명이라는 배우가 영화의 끝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복의 죽음,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엔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어떤 방향이 좋을까 얘기도 했지만 지금의 스토리 라인으로 충분하다. 창복의 엔딩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표현을 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 영화가 만들어가는 세계와 연결된다. 열심히 살아왔고, 의도치 않은 일에 휘말리고,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사랑했다는 말도 못하고 떠나버리게 되는 아쉬움. 그것이 창복이라는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시는 분들이 아쉬워할 수 있겠다. 

-팬들에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울 것 같다.

=내가 좀 물어보고 싶다. 영화를 볼 때 충격적이지 않았나? 


-진짜 충격적이었다. <소리도 없이>를 보기 전 막연하게 범죄영화 문법의 영화라고 추측했다. 태인과 창복이 사건에 휘말리고 다른 범죄 조직에 쫓기거나 다투게 되는 버디무비를 떠올렸다.

=그게 아마 우리 영화의 매력인 것 같다. 그래서 되게 현실적이기도 하다. 간혹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적 세계관에 빠지게 되지 않나. 

-맞다. 그렇게 된다. 

=<소리도 없이>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 처음으로 물욕을 부렸다가 도망을 치다가 겁에 질려서 그렇게 외쳐대던 하늘에 대고 욕을 하고 헛발질을 하고 굴러떨어져서 죽는다는 건, 지극히 판타지 같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것 같다.

아래부터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영화적 세계관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해졌다.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가.

=좋아하는데 최근엔 잘 안 보려고 한다. 연기할 때 영향이 있으니까.

-그걸 물어보고 싶었다. 일부러 보기를 피하는 건가.

=영화를 좋아했고 한때는 감독도 되고 싶었고, 연극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연출을 하면서 고통에 빠져보기도 하고… (웃음) 지금은 영화를 하면서 아,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잘하시지, 어떻게 저런 상상력을 가지고 연출을 하시지, 이런 걸 보고 느낀다. <비밀의 숲2> 같은 경우도 출연하지 못했지만 정말 멋있는 드라마다. 어느 순간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안 보게 된 이유는 과부하가 생기는 것 같아서다. 

-어떤 과부하인가.

=정보의 과부하 같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되면서 혹시나 나의 연기에 소리소문없이 스며들어서 어떤 것을 흉내내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최대한 열심히 일을 하고 (그 캐릭터를) 잘 비워내는 방법이 있다면 예전엔 영화를 보는 거였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산책을 한다거나 지인들과 농담을 나누고 술 한 잔 한다거나 그것만으로 충분히 회복이 된다. 그럴 때 좋은 영화를 보게 되면 너무나 깊이 각인이 된다.

-그런 영화 하나만 얘기해줄 수 있나. 

=이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봤다. 혹시 봤나? (봤다고 답하자) 그 분의 연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느 순간 그 영화가 인생영화가 되더라.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영화를 보는 행위가 큰 리프레시가 되지만 내 것을 더 찾고 싶고, 비워내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안 보려고 애를 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은데 묵혀 두고 있다. 

-언제 볼 수 있을까.

=사이사이 틈틈이.

-앞서 잠깐 <비밀의 숲 2> 얘기가 나왔다.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수연 작가님이랑 <비밀의 숲> 1편을 했고 <라이프>를 했다. <비밀의 숲 2>를 보는 내내 너무 좋았다. 시청률과 작품의 흥망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얘기하고 싶다. 지금도 논의가 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들을 작가님이 용기를 내서 글을 쓰셨고 정말 좋은 작업자들이 함께 만들었다. 내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게 좋다. 이제는 시청자로서 팬으로서 작품을 봤다. 

-이창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기며) 흐음…. 

-평생 가는 캐릭터인가. 

=그렇다… 나의 인생작이다. 그 전에 <응답하라 1988>이 있었다. 내 인생에 기가 막힌 역할 하나를 만났다. 그 인물은 투신함으로써 사라져버렸는데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리워하는 것 같다.

-<비밀의 숲 2> 방영과 함께 다시 이창준이 소환되는 현상이 조금은 신기했다.

=아마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의 모습에 공감이 된 것 같다. 자신의 과오를, 그리고 욕망을, 그리고 선택을, 분명하게 해내면서 마지막에 나의 이것으로 뭔가 되면 좋겠다는 메시지까지. 작가님의 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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