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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시체 처리를 하는 두 남자 이야기, 뭔 의미였나?

조회수 2020. 10. 19.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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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소리도 없이> (Voice of Silence,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소리도 없이>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리도 없이>를 보면서 느낀 가장 큰 생각은 '예사롭지 않다'였다. 암청색으로 가득할 만한 장면이 펼쳐질 그 순간마저도, 영화의 톤은 무심하고 일상적이며, 심지어 여름이라는 계절에서 느낄 수 있는 '밝은 느낌'을 준다. 어느 장면에서는 파스텔 톤을 띄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시체에서 나오는 피가 몸에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쓴 머리캡마저도 원색에 가깝다.

마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년)가 희망의 의미가 닮긴 보라색을 사용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보라색에 의미엔 상처와 갈등도 있다는 것을 잘 살렸던 것처럼, <소리도 없이>도 색채를 활용해 작품의 분위기를 어둡지 않게 한다.

<소리도 없이>는 범죄 조직의 시체 뒤처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두 인물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담는다. 이 직업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직업은 아니다. 그런데도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나는 범죄에 가담했지만, 악의를 한 것이 아니고, 생계를 위해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끔 설정된다.

예를 들어, 시체를 묻어주는 과정에서 '창복'은 기도도 하고,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기도 한다. 이런 지점을 통해 홍의정 감독은 인간이 선과 악이 모호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두 캐릭터는 상반된 성격과 신체로 인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처럼 설정됐다. '태인'은 말은 없이 묵묵히 몸으로 움직이는 캐릭터이고, '창복'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말이 앞서는 캐릭터다. 그리고 '창복'은 '태인'의 형에서 나아가 '인생 선배'로,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이 인생의 진리라고 말한다.

이는 '태인'과 '창복'만이 그런 것이 아닌데,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에는 '선배'와 '후배'의 관계로 두 명씩이 한 쌍이 되도록 엮여 있다. 홍 감독은 이 선·후배 캐릭터의 사용에 대해 "사회의 비틀어짐을 표현"했다고 밝혔는데, 선·후배가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두 캐릭터는 일하던 중 잠시 좀 사람을 맡아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어린아이 '초희'(문승아)로, '초희'는 낯선 사람에게 끌려온 상황임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침착하고 당황한 기색 없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여기서 나온 본능은 어떤 의도였을까? 홍 감독은 "'초희'는 3대 독자 아들이 있는 집의 아이"라면서, "차별이 있는 집안이라고 설정했고, 태어났을 때부터 '초희'는 이미 본인의 가치가 남동생보다 낮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찾으면서 자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초희'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홍 감독은 "사회적 시선에 봤을 때, 사회가 정한 가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면서, "'초희'도 '태인'과 '창복'처럼, 자신이 속했던 작은 사회에서조차 결핍이 있었던 캐릭터"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엄연히 이 장면은 '아동 유괴'이며, 보는 관객에게는 조금씩 불쾌감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터. 이에 대해서 감독은 "끔찍한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회에 태도에 집중하고 싶었다"라고 소개했다.

결국, '중립 기어'라는 말을 계속해서 남용하는 이 시기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도덕적 기준 대신, 주인공들이 처한 생존 조건에서 찾은 각자의 기준으로, 바쁜 현대의 삶 속에서 선악의 판단을 유보한 채 삶을 살아가는 무감각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려 했던 것.

이는 본래 홍의정 감독이 꺼내고 싶었던 제목과 유사하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소리도 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라는 문장이었다. 우리가 정할 수 없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변화하며 자란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괴물'과 같았다는 것.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였는지, 괴물이라는 강력한 뉘앙스가 직접적인 표현이 될 것 같아, 이 작품의 제목은 <소리도 없이>가 됐다고 한다. 이 작품은 흉악한 범죄가 나오는 다른 영화치고는 최대한 폭력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상징적으로 풀어 넣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그 톤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어디서는 비명이 흘러나오는데, 어디서는 라면을 끓여 먹으려 하는 '태인'과 '창복'이 보이는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이 그 예. 이처럼, 영화는 주제를 위해서 설정된 캐릭터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관찰하는 카메라는, 밝고 유쾌해 보이는 '아이러니'를 종종 집어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도 없이>는 '말초적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범죄 오락 액션, 혹은 느아르 범죄물을 기대하고 본 관객에게 실망감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흉악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태도에 대한 일침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한편, 홍의정 감독은 "누구나 살면서 선택의 순간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면서,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려 보며 스스로 위로를 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관람 포인트를 남겼다.

2020/10/08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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