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 박사가 들려주는 '돈의 역사를 알면 경제가 보인다'

조회수 2019. 11. 21. 10: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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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금융감독원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오늘은 금감원 소셜라이브 NOW 전문가초청 기획특집 2회 '홍춘욱 박사'편 소식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홍춘욱 박사님은 오랜기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시며 블로그, 유투브 등을 통해 일반금융소비자들에게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시기로 유명하신데요,

이번 강연에서는 '돈의 역사를 알면 경제가 보인다'를 주제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경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셨습니다.

그럼 함께 내용을 알아 보실까요?

"본 강연은 강연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금융감독원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총 두가지 사건을 통해 경제이야기들을 풀어주셨는데요,

그 첫번째 이야기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송나라가 망한 이유가, 가뭄 때문이라고?

혹시 아래 그림을 본 적 있으신가요?

출처: 출처 : http://www.npm.gov.tw/exh96/orientation/flash_4/index.html

중국의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인데요,

중국은 2012년 상해 엑스포에서 이 그림을 디지털버젼으로 공개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엄청 많은 사람과 가축들, 강을 지나가는 배와 수레, 가마 등이 오고가는 모습 속에서

당시 중국의 상공업이 엄청 발달했음이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어쩌면 중국은 지금의 경제성장이 과거 북송시절의 경제 호황기가 부활한 것임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그림을 전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당시 송나라(북송)는 인구수 1억의 대국으로, 전세계 GDP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경제에서 가장 발전했던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중국은 산업혁명을 일으키지 못하고 몰락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다시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최근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북방민족의 침략에 주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을 가로질러 흐르는 황하가 가뭄이 들 때

즉, 북방의 초원지대가 가뭄으로 굶주리고 있을 때 북방 유목민족이 당시 중국을 침략해온 것인데요,

황하강의 가뭄 시기와 북방민족의 침입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중국 송나라와 명나라의 멸망시점과 일치한 점에 착안하여,

'가뭄'이라는 환경의 변화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던 중국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가뭄'과 같은 환경의 변화가

한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주었다니,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다시 부활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 중국의 농업생산량 추이를 확인해보면 1952년부터 1977년까지 중국의 농업생산량은 연평균 4%의 증가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식량난을 겪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어느날,

중국의 한 마을(안휘성 샤오강)에서 집단 농장의 토지를 가구별로 구분하여 경작해보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집단 농장의 형태로 경작을 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갖고 스스로 경작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놀랍게도 그 다음해에 작물의 생산량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과거 15년간 생산된 작물의 양 보다 구분 경작 후 얻어들인 수확량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몫을 챙길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을 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요?

샤오강 마을의 농민들이 집단 농장의 토지를 나누어 경작해서 수확량을 크게 늘린 사례가 널리 퍼지면서

전국의 농민들이 이를 본받기 시작합니다.

공산당 정권도 이를 받아들여 농지의 사유화를 인정했고,

이를 통해 중국의 농업생산량이 연평균 15%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이 번영을 누리게 된 계기가

샤오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 된 것이지요^^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인하는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핫이슈죠!

미국의 금리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미국의 실질 정책금리가 올라가면, 즉, 미국의 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넘는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

경제성장률이 둔화된다고 합니다.

과연 처음부터 미국 연준의 파워가 이렇게 컸을까요?

잠깐 1929년 대공황때로 돌아가보죠,

대공황은 전례없이 긴 불황의 시기였습니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은 대공황이 일어나자 금리를 인하하였는데요

금리가 인하하자 은행예금이 줄어드는 현상을 목격합니다. 은행 예금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대출의 재원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기업이 파산하고 은행이 망하는 등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죠.

보통 불경기가 오면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이 은행 예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왜 대공황 당시에는 은행예금이 줄어들었을까요?

바로 금본위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금본위제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보니, 저금리에 따른 예금상품의 매력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에 투자하기 시작하는 자금유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환율이 고정되어있는 금본위제 하에서는

지금과 같이중앙은행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 닉슨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시장에 달러의 가치를 맡겨두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자 상황은 달라집니다.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이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지요.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한 이후,

미국에도 불황이 수차례오긴 했지만

채택 전과 비교했을 때 그 횟수도 절반 이상으로 줄었으며, 불황의 기간도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금본위제 폐지로 전세계는 물가의 불안을 대가로 긴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죠.

금본위제 폐지로, 자산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다시말해서 물가는 조금 불안해졌지만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리 조정으로 불황의 기간은 짧아지고 호황의 기간이 길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금과 달러의 역사를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요,

첫째,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리 인상/인하가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둘째, 호황이 길고 불황이 짧으니 불황이 왔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춘욱 박사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불황의 시기에 투자를 시도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과거 자료를 토대로 보았을때,

금본위제의 폐지 이후로 불황의 기간은 짧아지고, 호황은 길어졌지만

막상 불황의 시기 때는 불황이 끝이 없을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박사님께서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경제공부를 해아하고, 더불어서 역사 공부를 해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Q&A시간에는

어떻게 경제공부를 해야하고, 또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해드린 영상을 통해 꼭 확인해보세요!

지금까지 금감원 소셜라이브 기획특집 2회 '홍춘욱 박사'편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앞으로 성선화기자편, 돈쌤 편 등 전문가 특집 방송이 남아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금융감독원 대학생기자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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