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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9단 흥부자댁의 무한질주

조회수 2020. 9. 23. 10: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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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L HDI-3800 스피커

예전 MBC ‘복면가왕’에서 사람들을 환장케 한 2명의 주인공이 있었다. 공감하시겠지만, ‘우리동네 음악대장’과 ‘소리9단 흥부자댁’이었다. 사람들은 음악대장이 부른 ‘Lazenca, Save Us’와 흥부자댁이 부른 ‘사랑아’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더랬다. 그리고 음악대장이 국카스텐의 하현우, 흥부자댁이 소향인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블라인드 테스트의 짜릿함이었다.


JBL의 신작 스피커 HDI-3800을 리뷰하면서 간만에 소향의 ‘사랑아’를 들었다. 소향의 놀라운 가창실력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돋는다. 역시 위로 쭉쭉 뻗는 고음이 일품이다. 그런데도 양 쪽 트위터에서 음이 출발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녀가 그냥 무대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를 뿐이다. 전체적으로 에너지와 음압이 높고 그래서 듣는 이를 즐겁게 하는 스피커였다. 맞다. JBL의 이 스피커 자체가 소리9단 흥부자댁이었던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트 : HDI-3800은 이런 스피커

▲ JBL HDI-3800 스피커

‘복면가왕’이 그러했듯, 일단 구체적인 설계디자인 정보 없이 HDI-3800을 외관과 스펙으로만 살펴보자. 일단 JBL 스피커 같지가 않다. 지난해 나온 4312G나 L100 Classic, 올 초 나온 L82 Classic 같은 경우는 누가 봐도 JBL 스피커이지만, HDI-3800은 제3의 브랜드가 내놓은 제품 같다. 키가 1100.5mm에 달하는데도 가로폭이 300mm에 그치는 슬림한 형상 자체가 JBL 제작문법이 아니다.


HDI-3800은 4개 유닛이 2.5웨이를 구성하는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 고음역대는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 조합이며, 중저역대는 8인치 미드우퍼 3발로 짜였다. 주파수응답특성은 37Hz~30kHz(-6dB),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800Hz, 1.8kHz. 따라서 1.8kHz 이상은 컴프레션 드라이버+혼 조합이, 1.8kHz 이하 전 대역은 8인치 미드우퍼 중 한 발, 800Hz 이하 대역은 나머지 우퍼 2발이 책임진다. 그래서 2.5웨이다.

컴프레션 드라이버는 구조상 진동판이 보이지는 않지만 제작사에서는 ‘Teonex’라는 폴리머 진동판을 2장 썼다고 한다. 컴프레션 챔버에서 음이 빠져나오는 개구부(throttle) 직경은 1인치이고 가운데에는 뾰족하게 생긴 원추형 플러그가 박혀있다. 직사각형 형상의 사각 혼은 안쪽으로 제법 깊숙하게 박혀있다. 제작사에 따르면 수평 확산각이 120도, 수직 확산각이 110도라고 한다.


8인치 우퍼의 진동판 재질은 블랙 세라믹을 얇게 코팅한 알루미늄. 가운데에는 제법 큼지막한 더스트 캡이 붙어있다. 인클로저 재질은 0.75인치 두께의 MDF이며, 마감은 월넛과 그레이 오크 무늬목, 또는 하이글로스 블랙 피아노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92dB,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후면에 2개가 세로로 박혀있고, 스피커케이블은 바이와이어링/바이앰핑을 지원한다. 무게는 38kg.


이러한 외관과 유닛 디자인, 스펙을 감안하면 HDI-3800은 이런 스피커다.

■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써서 음압(SPL)을 높인 스피커다.
■ 원형 혼 대신 사각 혼을 달아 수평 확산각을 넓히려 했다.
■ 미드우퍼 3발과의 톤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도 이 혼이 한다.
■ 미드우퍼 직경이 8인치이기 때문에 중저역의 에너지감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 그런데도 3웨이 구성이 아닌 것은 그만큼 저역 에너지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 스피커 인클로저 4개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된 것은 회절을 줄이기 위해서다.
■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가 2개나 후면에 있기 때문에 세심한 위치 선정이 필요하다.
■ 감도가 상당히 높은 만큼 저출력이라도 SN비가 좋은 앰프를 물려야 한다.
■ 하지만 공칭 임피던스가 낮기 때문에 앰프 전원부가 잘 설계되어야 한다.

소리9단 JBL과 HDI 시리즈

▲ JBL HDI-3800 스피커

필자가 JBL을 대놓고 ‘소리9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JBL은 탄노이나 쿼드, 매킨토시처럼 업력이 오래되고 오디오업계에 한 획을 그었던 제품과 신기술이 많기 때문이다. JBL의 공식 설립 연도는 제임스 B. 랜싱 사운드(James B. Lansing Sound)가 설립된 1946년이지만, 제임스 랜싱이 미국 LA에 랜싱 매뉴팩처링 컴퍼니(Lansing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한 1927년으로까지 포함시키면 올해로 무려 94주년을 맞는다.


제작사 업력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소리9단인 것은 아니다. 결과물이 쟁쟁해야 한다. 알텍에 인수됐던 시절(1941~1945)에는 ‘보이스 오브 씨어터’(Voice of Theater)로 불린 A4, A5, A7 스피커가 나왔고, 이후 콘솔 스피커로 파라곤(Paragon), 3웨이 북쉘프 스피커로 4311과 L100 Century, 4웨이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로 4350 등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1970~80년대 4300 시리즈는 국내 오디오파일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갖고 싶은 스피커였다. 그 푸른 배플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JBL 주요 스피커를 ‘아주 짧게’ 소개하면 이렇다.

■ 1954년 D30085 Hartsfield
■ 1957년 D44000 Paragon
■ 1957년 D40001 Harkness
■ 1964년 L1001 Lancer
■ 1968년 4311 : 3웨이
■ 1969년 L100 Century
■ 1973년 4350 : 4웨이
■ 1973년 4341 : 4웨이
■ 1974년 4333 : 3웨이
■ 1975년 4331 : 2웨이
■ 1976년 4343 : 4웨이
■ 1982년 4312 : 3웨이
■ 1982년 4344 : 4웨이
■ 1985년 Everest D55000
■ 1989년 K2 S9500
■ 1989년 K2 S7500
■ 1993년 K2 S5500
■ 1996년 4312B
■ 1997년 43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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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K2 S9800 : 15인치 3웨이
■ 2005년 4312D : 12인치 3웨이
■ 2006년 Everest DD66000 : 60주년 모델. 듀얼 15인치 3웨이
■ 2011년 4312E : 12인치 3웨이
■ 2013년 Everest DD6700 : 현 플래그십. 듀얼 15인치 3웨이
■ 2017년 4312SE : 70주년 모델. 12인치 3웨이
■ 2019년 L100 Classic : 12인치 3웨이
■ 2019년 4312G : 12인치 3웨이
■ 2020년 L82 Classic : 8인치 2웨이
■ 2020년 HDI-3800 : 트리플 8인치 2.5웨이

JBL은 또한 홈 오디오뿐만 아니라 프로페셔널 오디오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사실, 4웨이 4300 시리즈나 그 이전에 나온 3웨이 4310, 4311 모두 스튜디오 모니터용이었다. 4311(1968년)을 집에서도 쓰라고 만든 것이 L100 Century(1969년)였고, 이를 50년만에 부활시킨 것이 L100 Classic(2019년)이었다. 현재 대형 공연장 천장에 길게 드리워진 라인 어레이(Line Array) 스피커 대부분은 JBL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선보인 HDI 시리즈는 이러한 JBL 프로페셔널 오디오의 내공이 집약된 새 홈 오디오 스피커다. HDI는 ‘High Definition Imaging’(고선명 이미지)의 약자로, JBL 프로 스피커에서 먼저 개발된 D2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HDI 웨이브 가이드 기술이 고스란히 이식됐다. D2 컴프레션 드라이버는 2012년에 나온 VTX 라인 어레이 시리즈에, HDI 웨이브가이드는 2013년에 나온 M2 모니터 스피커에 각각 처음 채택됐다.


HDI 시리즈의 미드우퍼는 AAM(Advanced Aluminum Matrix)이라는 알루미늄 콘 진동판을 새롭게 채택했다. 세라믹을 얇게 코팅해 무게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진동판의 강도를 높였다. 바스켓 강도를 높이기 주물(cast-iron frame)로 제작하고, 통상 알루미늄을 쓰는 인덕션 감쇄 링(shorting ring) 재질로 구리를 쓰는 등 곳곳에 세심한 배려가 베풀어졌다.


HDI 시리즈는 현재 2개 플로어 스탠딩, 1개 북쉘프, 1개 센터, 1개 서브우퍼로 구성됐다. 이번 시청기인 HDI-3800이 플래그십이다. 같은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인 HDI-3700은 우퍼 직경이 6.5인치이고 키도 약간 작다.

▲ JBL HDI 시리즈
HDI-3800 : 트리플 8인치 우퍼, 2.5웨이, 37Hz~30kHz, 800Hz/1800Hz, 1100.5mm(H), 38kg

HDI-3700 : 트리플 6.5인치 우퍼, 2.5웨이, 38hz~30kHz, 900Hz/2000Hz, 986.5mm(H), 28kg

HDI-1600 : 6.5인치 미드우퍼, 2웨이, 40Hz~30kHz, 1900Hz, 370mm(H), 10kg

흥부자댁 JBL의 헤리티지 : D2 컴프레션 드라이버 & HDI 혼

▲ JBL HDI-3800 스피커

이러한 장구한 스피커 제작의 역사와 헤리티지가 ‘소리9단’으로서 JBL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은 ‘흥부자댁’으로서 JBL의 사운드 시그니처를 뒷받침한다. 다른 스피커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리듬앤페이스와 넉넉한 에너지감의 배경에는 대구경 우퍼와 함께 이들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JBL의 역사는 이러한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 개발의 역사이기도 했다.


컴프레션 드라이버(compression driver)는 말 그대로 진동판이 일으킨 음파에너지를 응축시켰다가 빠른 속도로 내뿜는 드라이버다. 따라서 음파에너지를 가두는 챔버가 있어야 하고, 챔버의 출구(throttle)는 진동판 직경보다 좁아야 한다. 그리고 통상 이 출구에는 음파들이 뒤섞여 위상이 뒤틀어지는 것을 막는 페이즈 플러그(phase plug)가 박혀 있다. 출구를 빠져나온 음파에너지는 혼을 통해 직진 능력(directivity)을 얻고, 중저역대 주파수와의 에너지 밸런스를 확보한다.

▲ Altec A4 스피커

JBL은 이러한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 개발의 산증인이다. 랜싱 매뉴팩처링 컴퍼니 시절인 1933년에 이미 285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MGM에 납품했고,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멀티 셀 혼의 멋진 조합은 알텍 시절인 1944년 A4 스피커를 탄생시켰다. 이후 1946년 JBL이 되고 나서 아령 모양의 D175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1217-1290 혼 조합을 선보였고, 1954년에는 업계 최초로 4인치 진동판을 채택해 9kHz까지 플랫하게 커버하는 375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내놓았다.

▲ JBL K2 S9800 스피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JBL의 음향 렌즈(Acoustic Lens)도 빼놓을 수 없다. 위에서 봤을 때 W 모양의 미로형 음향 패널들은 결국 수평 확산각을 넓히려 한 혼의 변주였다. 1980년에는 장구 모양의 바이 래디얼(Bi-Radia) 혼을 개발, 트윈 우퍼의 4435 스피커에 채택했다.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진동판 역시 1982년 티타늄, 2001년 베릴륨으로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됐다. 베릴륨 컴프레션 드라이버+바이 래디얼 혼 조합을 슈퍼트위터와 트위터에 투입한 15인치 3웨이 스피커가 바로 K2 S9800이었다.


이번 시청기인 HDI-3800은 D2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의 조합.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D2 컴프레션 드라이버는 2011년 VTX 시리즈 라인 어레이 스피커에서 처음 채택됐고, HDI 혼은 2013년 M2 스피커에서 첫 선을 보인 IC 웨이브가이드를 바탕으로 했다. D2는 ‘Dual-Diaphragm’의 약자. 말 그대로 진동판이 2장이라는 얘기이지만, 모터 시스템(자석+보이스코일+스파이더) 역시 두 쌍이 투입됐다. 진동판 직경은 2인치, 가운데에 뾰족한 페이즈 플러그가 박힌 쓰로틀은 1인치 직경을 보인다.

▲ D2 컴프레션 드라이버 분해도

눈길을 끄는 것은 폴리머 재질의 진동판 2장이 링 라디에이터(ring radiator) 타입이라는 것. 잘 아시는 대로, 링 라디에이터는 특정 고음 주파수가 소프트 돔 진동판의 한 복판에서 소멸(phase-cancellation)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링 라디에이터 트위터들의 고역 상한이 높은 것도 위상이 소멸되는 지점인 가운데 진동판 자체를 없앤 덕분이다. D2 컴프레션 드라이버 역시 -6dB 기준이기는 하지만 일반 컴프레션 드라이버나 소프트 돔 트위터보다 높은 30kHz까지 뻗는다.

▲ IC 웨이브가이드를 처음 채택한 M2 모니터 스피커

사각 혼 형태의 HDI 혼은 JBL이 2013년에 특허를 받은 IC(Image Control) 웨이브가이드를 바탕으로 했다. IC 웨이브가이드는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음 확산(수평 확산각 120도, 수직확산각 110도)과 함께, 크로스오버 주파수에서 트위터와 미드우퍼의 사운드가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혼 대신 굳이 웨이브가이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다. HDI-3800이 8인치 우퍼를 3발이나 달았는데도 톤이나 에너지 측면에서 중저역이 고역에 비해 튀지 않은 것은 HDI 혼이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시청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진행된 HDI-3800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오렌더의 A30, 인티앰프로 오디아플라이트의 FLS10을 동원했다. 음원은 오렌더 앱을 통해 주로 타이달(Tidal)과 벅스(Bugs)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키스 자렛의 피아노 독주곡 ‘쾰른 콘서트’를 들어보면 음이 묵직하고 정보량이 무척 많은 점이 돋보인다. 역시 8인치 직경의 우퍼 3발을 1.5웨이로 구성한 것과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의 조합 덕분이다. 정신이 몽롱해질 만큼 음들이 난무하고 피아노 현 울림을 상당히 오래 끌고 가는 등 디테일도 상당하다.

Marcus Miller ‘Trip Trap’(Laid Black)
윤곽선이 선명하고 음들이 저마다 풍성하다. 특히 저역의 풍성함과 단단함은 이 스피커를 통해 JBL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준다. 묵직한 저역이 계속해서 펀치를 날린다. 여기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고음역대까지 가세하니, 그동안 현대 스피커에서는 좀체 느낄 수 없었던 오디오적인 쾌감이 작렬한다. 이날 따라 이 곡이 ‘사내의 재즈’로 들린다. 넓은 어깨와 등을 가진 남자의 재즈이자, 싱싱하고 에너지감이 넘쳐나는 재생음인 것이다. 계속해서 무대 곳곳에서 들리는 별의별 악기 소리는 이 스피커가 진정 HDI(High Definition Image) 스피커임을 웅변한다. 전체적으로 야위거나 가는 음, 좁은 무대의 정반대 편에 선 스피커다. 대신 넓은 공간과 볼륨 확보는 필수다.
Kat Edmonson ‘Lucky’(Way Down Low)
여성보컬 곡을 들어보니 예상 외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무대 정중앙, 필자의 바로 앞에 등장해 훅 입김을 불어넣는 보컬의 실체감이 압권. 배경 노이즈도 무척 낮은 덕분에 딕션이 무척이나 선명하다. 토크가 높은 자동차로 미끈하게 깔린 아스팔트 도로를 질주하는 느낌. 과속에 따른 덜컹거림도 없고 서스펜션도 좋아 속도 대비 안락함도 상당하다. 묵직하고 리드미컬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 느낌이 좋다. 안토니오 포시오네의 ‘Visions’를 들어보면, 이 스피커의 또다른 덕목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투명함’이다. 어쿠스틱 기타는 바로 앞에서 연주를 하고, 여성보컬은 기름기와 화장기를 모두 걷어내고 노래를 부른다. 덕분에 무대가 좁거나 갑갑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고음은 쭉쭉 뻗는다.
Leonard Bernstein, New York Philharmonic ‘Mahler Symphony No.2'
1악장을 여는 오른쪽 첼로 무리들의 저역이 무지막지하다. 왜 8인치 유닛을 2개나 썼는지, 그것도 중저역과 저역이 중첩되는 1.5웨이 구성을 취했는지 말러 2번을 들어보니 이해가 된다. 작은 음량의 피아니시모 파트에서도 폼이 무너지지 않는 모습도 대단하다. SN비와 소릿결의 부드러움은 밀폐형 메탈 인클로저에 메탈 유닛을 쓴 하이엔드 스피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총주 파트에서 해일처럼 확 터뜨려주는 이 맛은 안 들어보면 모른다. 또한 음들이 쏟아질 때 해상도가 약간 뭉개지는 면이 있지만, 관악 혼 악기들의 질풍노도에 비하면 그냥 눈감아줄 만한 수준이다. 에사-페카 살로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페르귄트’에서는 무대 깊숙한 안쪽에서 음들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모습에 전율마저 느꼈다. 빠르게 들이마셨다가 빠르게 내뱉는 트랜지언트 특성,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소향 ‘사랑아’(복면가왕)
먼저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어보면, 그냥 녹음 현장으로 타임슬립해 들어간 것 같다. 그야말로 흠뻑 음의 샤워를 즐긴 느낌. 역시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 조합은 여성보컬 고음과 궁합이 잘 맞는다. 바이올린 반주의 디테일도 일품. 소향의 ‘사랑아’에서는 아예 소름마저 돋는다. 한마디로 폭발적인 소향의 가창력이 제대로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커에서 음이 출발한다는 부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다. 만약 D2 드라이버와 HDI 웨이브가이드가 없었으면 고음역대에서 펼쳐지는 이런 순도 높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음압(SPL)이 요즘 스피커는 애들처럼 느껴지게 만들 만큼 높다. 속이 다 뻥 뚫린다. 앰프가 받쳐준 덕도 크지만 ‘이 가격대에 뭐 이런 스피커가 다 있나?’ 의아할정도. 가수 뿐만 아니라 스피커도 노래9단 흥부자댁이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 JBL HDI-3800 스피커

독일 바우하우스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디자인 철학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겼다. 모든 장식이나 불필요한 것들, 의미없는 것들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FFF 철학’은 JBL에서도 유효하다. 듀얼 링 라디에이터를 투입한 D2 컴프레션 드라이버, 수평 확산각을 늘려 청취 범위의 한계를 넓힌 사각 혼, 낮은 질량에 강도를 더한 8인치 세라믹 코팅 알루미늄 콘 우퍼 등등 HDI-3800에는 모든 것이 재생음과 사운드스테이지를 위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음과 무대는 JBL 스피커만이 누릴 수 있는 독보적인 그 무엇이었다.


이번 리뷰가 비록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혼에 집중하고 말았지만, 우퍼를 3발이나 투입해 이를 800Hz를 기준으로 1.5웨이 구성을 취한 점이나, 중고역 크로스오버 주파수를 핵심 중역대인 2kHz~3kHz 밑에서 설정한 점 등 HDI-3800에서 더 살펴보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지난해와 올해 필자의 마음을 쏙 흔들어놓았던 4312G나 L82 Classic 스피커와도 찬찬히 맞비교를 하고 싶다. 소리9단 흥부자댁 JBL의 발걸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S P E C I F I C A T I O N
Description 2.5-way Floorstanding Loudspeaker
Enclosure Type Bass-reflex design with rear-firing port
High Frequency Transducer 1-inch (25mm) Teonex compression driver
Low / Mid Frequency Transducers Three 8-inch (200mm) black
Units Advanced Aluminum Matrix cone, cast frame woofers
Crossover Frequency 800Hz, 1800Hz
Sensitivity (2.83V @ 1M) 92dB
Nominal Impedance 4 Ohm
Recommended Amplifier Power 25W – 300W
Frequency Response 37Hz – 30kHz (-6dB)
Dimensions (H x W x D) 1100.5 x 300 x 417.8mm
Net Weight 38kg
■ I M P O R T E R & P R I C E
수입원 하만럭셔리 총판 HMG (02 - 780 - 9199)
가격 69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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