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더 트릴로지의 한 축
올해도 그렇지만 작년 한 해 스펜더는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스피커 브랜드 중 하나이다. JBL을 최고의 스피커로 알던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스펜더 S-100P의 질감 있는 소리는 JBL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에 들었던 SP100의 소리는 이 정도면 평생 불만 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세상에는 매력적인 소리를 내는 스피커도 많고 좋은 소리를 내는 스피커들이 지속해서 출시되고 있다. 때때로 새로운 스피커를 들어보면 그 스피커가 내는 훌륭한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어린 시절 각인된 JBL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순수한 소리로 여운을 두고 공간을 채우는 JBL의 대형기는 온종일 큰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서 변함없이 함께하고 싶은 스피커이다.
그런데 새롭게 바뀐 스펜더의 클래식 100을 들은 이후로 S-100P와 SP100을 처음 들었을 때의 예전 감정과 느낌이 살아나며 이 정도 스피커라면 더 큰 욕심 없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최고로 좋은 오디오라도 하나의 시스템만 계속 들으면 그 시스템이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유 없이 질리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내 시스템이 좋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뭔가 부족한 듯한 다른 시스템으로 가끔 분위기 전환을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하나로 만족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펜더가 들려주는 소리는 클래식 100이 아니라 클래식 1/2 정도만 되어도 한동안 다른 생각은 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오늘 리뷰하는 A7이야말로 그런 제품이다. 엔트리급이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말이다.
스펜더의 제품 라인은 클래식 시리즈와 D 시리즈 그리고 A 시리즈로 나뉜다. 클래식 시리즈는 말 그대로 스펜더의 정통성을 계승한 모델이다. 그중에서도 클래식 100은 12인치 우퍼를 가진 스펜더의 대표 격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오디오 업계의 인수 합병과 생산 라인의 글로벌화로 인해 아메리칸 사운드 혹은 브리티시 사운드 같은 말이 약간은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런 명맥이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유닛과 캐비닛, 크로스오버까지 영국 내에서 자체 생산하고 있는 스펜더의 경우 브리티시 사운드의 대표적 브랜드 중 하나이다. 호방한 아메리칸 사운드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중음의 질감을 채워주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전형이 바로 스펜더의 클래식 시리즈인데 현재 출시되는 클래식 시리즈의 가장 작은 모델인 4/5조차 전형적인 클래식 라인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현재 클래식 라인의 소리는 과거를 계승하지만,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트위터와 넓은 무대를 그리는 미드 우퍼의 영향으로 인해 약간은 차분하고 젖어있는 사운드에서 좀 더 화사한 쪽으로 진화했다.
스펜더의 D 시리즈는 하이엔드 지향의 모델이다. 캐비닛의 디자인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직육면체 플로어스탠딩 모델이지만 사용된 유닛의 종류나 배치 등에서 기존 스펜더의 클래식 라인과는 차별성이 느껴진다. 최근에 클래식 100과 D9을 같은 자리에서 비교하여 들어보았는데 완전히 다른 성향이라고 느꼈다. 전형적 브리티시 사운드의 클래식 100과는 달리 D9의 경우는 전 대역에서 초고해상도를 특징으로 전체적인 느낌이 상당히 호방하고 저음도 꽤 잘 나와서 아메리칸 사운드의 하이엔드 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소리의 밸런스도 좋고 소스기나 앰프의 변화만이 아니라 케이블의 변화에도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여준다. 마스터링 스튜디오의 모니터 스피커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A 시리즈는 첫인상에서 스펜더의 엔트리급이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클래식 시리즈나 D 시리즈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A 시리즈의 모든 모델이 2웨이 방식이어서 비주얼 면에서는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그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바뀌며 클래식 시리즈나 D 시리즈와 성능으로 차별화되는 느낌은 사라지고 성향이 다른 느낌의 스피커로 느껴지는 것이다. A 시리즈는 A1, A2, A4, A7의 4가지 제품이 있고 D 시리즈는 D7, D9 이렇게 2가지 제품이 있다. A 시리즈에서 제일 비싼 A7과 D 시리즈에서 제일 저렴한 D7의 가격 차이는 2배 이상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 그런데 소리를 듣는 순간 A7의 성능 덕분에 상위 모델과 견주어 볼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A7은 What Hi-Fi? 등의 잡지에서 2018년, 2019년 연속 베스트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로 상을 받으며 그 우수성을 입증받았다. 2017년에는 A4가 같은 상을 받았으며 소형 북쉘프인 A1과 A7을 같은 자리에서 비교해 들어본 결과 캐비닛 크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A1의 소리가 A7과 거의 유사했다. 그러니 A 시리즈는 가성비도 좋지만, 절대적인 성능으로 따져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A, D, 클래식 시리즈 제품 라인은 가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성향을 보완하는 느낌이 들며 각각 스펜더 트릴로지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디자인 및 기술
H 934mm x W 180mm x D 305mm의 크기에 18kg의 무게를 가진 A7은 스펜더에서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한 180mm EP77 폴리머 콘 베이스 미드 우퍼를 장착하고 있다. 우퍼의 폭과 캐비닛의 폭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EP77 우퍼는 D 시리즈는 물론이고 클래식 시리즈에도 탑재되는 스펜더의 대표 유닛으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때마다 지속해서 개량됐으며 이전 세대 유닛에서 흔히 에지라고 말하는 고무 재질의 서라운드와 댐퍼 혹은 스파이더라고도 하는 서스펜션의 재질이 개선되었다. 새로운 EP77 폴리머 콘 우퍼는 2웨이 모델인 A 시리즈에서는 베이스와 미드레인지를 담당하고 D 시리즈와 클래식 시리즈에서는 미드레인지 유닛으로 사용된다. 스펜더가 계승해온 브리티시 사운드를 위한 핵심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선형성이 우수하고 반응이 빠르면서 넓고 힘 있는 소리를 내준다. 가장 큰 장점은 이런 소리를 구성하는 성능의 요소들이 세밀하게 조율되어 있어 정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닛의 재생 각도가 넓으면 소리의 직진성은 감소하는데 이 두 가지 요소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정용 스피커가 아닌 PA 스피커의 경우 설치 환경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라는 의미에서 같은 모델이라도 방사각이 다른 여러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유명 스피커인 EV(Electro-Voice)의 경우 EVF-1122란 모델이 있다. 1122의 의미는 2웨이 모델에 우퍼로 12인치 드라이버 하나가 장착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1122 모델의 종류가 19개나 있는데 모델 넘버 뒤에 1122/126, 1122/64, 1122/66, 1122/94 이런 식으로 하위 넘버가 붙어있다. 126의 경우 재생되는 소리의 가로세로 방사각이 120°x60°이고 64의 경우 60°x40°란 의미이다. 이처럼 방사각은 PA에서 스피커의 성능을 나타내는 스펙 중 모델 넘버에 표시될 만큼 매우 중요하고 디테일한 요소이다. 홈 오디오에서는 이런 방사각을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리 크지 않은 일반 가정의 청취 환경을 전제로 설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북쉘프 스피커라 할지라도 니어 필드 모니터의 경우 가까운 위치에 스위트 스팟이 존재하며 니어 필드가 아닌 스피커에 비해 소리의 직진 성능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직진성만 좋은 스피커는 방사각이 좁아 스피커 사이의 거리를 넓게 벌려 놓았을 경우 스피커가 바라보는 각도를 모아주지 않으면 스위트 스팟에서조차 소리가 비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피커 중에는 절대적인 성능에서 방사각이 넓으면서 분출하는 힘도 좋은 유닛이 있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 스피커에서 이러한 소리 재생 요소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면 가속력은 좋으나 브레이크는 잘 듣지 않는 자동차처럼 불안정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소리는 넓게 퍼지지만 힘이 없어 정 가운데 상이 잘 맺히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한 예 중의 하나이다. 물론 스피커가 좋아도 앰프가 힘이 없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스펜더의 EP77 폴리머 콘 우퍼는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상대적으로 넓고 빠르며 힘 있는 재생을 해주는 좋은 유닛이다. 참고로 EV 스피커 모델에서 방사각을 측정하는 방법은 음압이 6dB 이상 떨어지는 범위를 한계로 하고 있다.
A7에 장착된 22mm 와이드 서라운드 트위터는 시어스(Seas)의 사전 코팅된 소노렉스(Sonolex) 패브릭 돔 트위터로 추정된다. 스펜더에서 정확한 사양을 밝히지 않았고 해외 리뷰에서는 D 시리즈와 같은 소재인 폴리 아미드 돔 혹은 실크 돔 트위터라고 말하는데 패브릭 돔 계열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링 라디에이터에 탑재되었고 매쉬 타입 금속 그릴이 보호대 역할을 하고 있다. 고음 한계가 25kHz에 달해 D 시리즈나 클래식 시리즈와 전혀 차이가 없다. 트위터의 음색은 D 시리즈보다는 클래식 시리즈에 가깝지만 둘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세 시리즈 모두 소프트 돔 트위터이지만 전반적인 성향의 차이 때문에 고음의 음색이 좀 다르게 느껴진다. D 시리즈가 좀 더 예민하고 샤프한 느낌인 것에 비해 클래식 시리즈는 온기가 있는 고해상도의 느낌이다. 클래식 시리즈가 아빠고 D 시리즈가 엄마라면 A 시리즈는 부모 모두를 닮은 자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장점만 빼닮은 똘똘한 놈이다.
A7의 우퍼와 트위터를 나누는 주파수는 3.7kHz로 A1, A2 모델의 4.2kHz에 비해 낮으며 A4와는 같고 트위터가 감당하는 대역은 A1, A2에 비해 넓어졌다. 재생 주파수 대역이 32Hz - 25kHz로 12인치 우퍼로 20Hz를 내는 클래식 100과 비교해 피아노의 흰 건반으로 5개를 못 내는 성능이고 실제 피아노 음으로 따지면 밑에 쪽 마지막 흰 건반 2개를 내지 못하는 정도이다. 임피던스는 8Ω이며 감도가 88dB이다. 앰프의 허용 입력은 25-200W이다. 울리기가 어려운 느낌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앰프를 물리면 좋은 소리로 보답을 해줄 것이다.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A6R에서 크로스오버 역시 개선되었는데 스펜더에서 자체 생산된 고선형 탭 인덕터를 장착하였다. 스펜더 웹페이지의 스피커를 제작하는 동영상을 보면 인덕터의 코일을 직접 감는 장면이 나온다. 내부의 선재는 은도금한 순동선을 사용하였고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인클로저는 스펜더가 다이내믹 댐핑(Dynamic Damping)이라고 명명한 기술이 사용되었다. 불필요한 울림을 만드는 캐비닛의 에너지를 소리가 아닌 열로 변환하여 감쇄하는 기술로 캐비닛 내부에 부피와 질량이 적고 고무와 비슷한 합성 소재인 폴리머 댐퍼를 에너지가 밀집되는 위치에 적용하는 것이다. 스펜더에서는 다이내믹 댐핑에 대해서도 언급이 거의 없어서 정확한 기술적 리뷰는 하기 어렵지만, 나무 재질 인클로저를 가진 스피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통 울림으로 인한 유닛의 진동이 방해받는 현상은 확실히 A7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닛의 반응이 빠르고 마치 공중 부양 스피커처럼 유닛의 진동이 방해받지 않아 스테이지를 넓게 느낄 수 있었다.
A7 뒷면의 밑부분에는 일반적인 원형 포트보다 훨씬 크고 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단면이 비대칭인 저음 반사 포트가 존재한다. 리니어 플로우 포트(Linear Flow Port)로 명명된 이 포트는 공기의 속도와 압력을 감소시켜 포트 내부와 주위의 공진이 없어 소리 왜곡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트 내부나 주위의 압력이 높은 스피커에 비해 좀 더 벽 가까이 스피커를 설치해도 부정적 영향을 덜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A7의 밑면에는 4개의 스파이크가 장착되어 있다.
청음
청음에는 초단관에 6N1P을 사용한 하이브리드 인티앰프 빈센트 SV-237MK를 사용하였다. 8Ω에 150W의 출력을 가진 앰프인데 스펜더의 A7과 좋은 상성을 들려주었고 A7의 실력을 검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A7의 구매를 고려하는 분이 계신다면 빈센트 SV-237MK와의 매칭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청음을 해보면 느낄 수 있지만, A 시리즈는 단순히 스펜더의 엔트리 라인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인상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다. A 시리즈는 전통적인 스펜더의 사운드와 모던한 하이엔드 사운드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전략 상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엔트리급 스피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압도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는데 저음은 매우 단단했고 모든 대역에서 터질 것 같은 밀도와 섬세한 해상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음색 밸런스 역시 흠잡을 곳이 없었으며 어느 정도 색이 들어간 클래식 시리즈나 D 시리즈보다도 평탄한 느낌이 들었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전통적인 브리티시 사운드의 소릿결이 진화되어 섬세함과 입체감이 살아있으며 2웨이의 크지 않은 몸체에서 풍부하고 터질 듯한 밀도와 균형 있는 음색 그리고 공간을 압도하는 펀치와 속도에 단단하면서 빠지지 않는 저음까지 겸비한 스펜더의 A7은 신기한 생각이 들 만큼 훌륭한 사운드를 재생해냈다. 매칭에 대한 고민 없이 좋은 소리를 내줄 것으로 생각되지만 좀 더 좋은 앰프와 공간의 위치까지 생각해 배치한다면 A7은 대단한 스피커와 비교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보기보다 강력한 스피커이다.
■ S P E C I F I C A T I O N
Description | 2-way floorstanding |
Drive units | LF 180mm, HF 22mm |
Size | H x W x D: 934 x 180 x 305mm |
Weight | 18Kg |
Response | 32Hz – 25KH |
Impedance | 8 Ohm |
Amplifier | 25 – 200Watts |
Sensitivity | 88dB |
Crossover | 3.7KHz |
■ I M P O R T E R & P R I C E
수입원 | 헤이스 (02 - 558 - 4581) |
가격 | 495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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