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시대의 오디오저널
오디오 저널 40년사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오랜, 음향기기 정보를 다룬 매체는 신문사가 발행하는 여성지였다. 70년대 중반 무렵 월간지의 별책으로 ‘오디오 구매 가이드’ 타이틀을 달고 제품의 이미지와 간략한 특징 가격 등이 빼곡이 소개되어 있었다. 구매자에게 필요한 구매 팁과 정보는 서두에 간략하게 일괄되는 정도였지만 형태를 갖춘 최초의 오디오 저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당시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10개사에 달하는 국내 브랜드 혹은 일본 브랜드의 라이센스 제조사 제품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오디오 저널은 80년대에 들어와서 같은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음악전문지로 바톤을 넘겨주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오디오 전문 매거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게 1세대 대한민국 오디오 간행물의 시작이고 80년대까지 라이센스 계간지를 포함 4개의 오디오 매거진들이 생겨났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하이파이 및 AV 전문지들이 생겨나며 2세대 오디오 월간지의 시대가 열렸다. 신구 매거진 간에 인력이동도 생기고 사주가 바뀌고 양적으로 늘어난 매체간 주도권 경쟁과 힘의 균형도 변경되어갔다. 이런 구도는 인터넷 웹진이 등장하는 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했다. 종이로 인쇄를 해서 출판을 하는 고전적 매거진들은 업무효율과 채산성의 불균형으로 원가경쟁을 하며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신생 온라인 전문 웹진들이 하나 둘 대체하게 되었다. 유료광고를 매개로 하는 종이 매거진은 이제 토종 월간지가 하나, 라이센스 계간지가 하나 정도 남게 되었다.
의뢰인인 제작사 및 수입사와 제품정보를 생산하는 웹진의 관계는 좀더 긴밀해졌다. 특히 웹진의 특성상 제품시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일이 확장되어감에 따라 웹진의 입장에서는 날로 늘어가는 의뢰인에게 시연과 판매를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영향력 있는 웹진이 능동적으로 수동적으로 판매를 대행하는 일들이 늘어나며 유통업체의 역할을 병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 혹은 구매자들에 의해 전문 판매업체가 웹진 성격의 자체 컨텐츠를 추가하려는 접근과는 의뢰로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 여전히 웹진은 웹진만의 고유 영역을 달리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아는 바, 매체의 변천에 따른 약 37년간 대한민국 오디오저널의 히스토리이다.
리뷰는 마케팅인가? 유익한 정보전달인가?
80-90년대 대한민국 오디오 저널은 다소간 교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 그렇듯 구매자로서는 특정 리뷰가 맞고 틀리고 검증을 할 수도, 그런 의식 조차도 없이 전문가의 제품리뷰를 숭상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참고 컨텐츠가 거의 없던 초기 시절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 제품의 소리를 듣는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생긴 건지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면 감사했다. 애석하게도 다수의 오디오 매장들은 구매력없는 소비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했고 매장 직원들과 안면을 터가는 과정이 곧 그 사람의 오디오 경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디오 매거진은 과연 한줄기 빛과 같았고 평론가는 멘토와 같은 존재였다. 평론가의 알 수 없는 얘기,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지도 못했지만 묻지 않고 따지지 않았다. 평론가의 리뷰 자체가 그 제품에 대한 하나의 계몽문서라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디오저널 초기 평론가의 가치는 일단 경험많은 오디오파일이라는 데 있었다. 글을 쓰는 일 이전에 일단 특정 제품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기능을 이해하고 작동시켜서 소리를 듣고 판단하는 일은 더욱 그러했다.
오디오 제품 관련 컨텐츠가 가장 왕성하던 시기는 대략 10종에 달하는 매거진들이 발행되던 90년대 중후반무렵이었다. 채널이 늘어나자 리뷰어의 수요 또한 급증했다. 정돈되지 않은 채 혼선도 많았다. 특정 평론가의 리뷰를 둘 이상의 매거진에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수록하기도 하고 검증되지 않은 평가자가 글로 제품을 평가하는 일이 빈번해졌지만 광고주들은 그것을 특별히 연연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발견되면 그걸 문제삼을 따름이었다. 소위 ‘대형 판매자가 주도하는’ 리그였던 오디오 시장에서 광고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매거진들은 제품리뷰를 판매를 위한 참고설명 정도로 활용했다. 저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구매자가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 이 순환고리는 나름의 질서로 정착해왔다.
이런 판매자 중심 구도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왕성한 정보교환과 수집으로 ‘유식해진’ 구매자가 늘어가면서 판도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엄을 지나면서 인터넷의 발달은 이런 계몽운동을 폭발적으로 활성화시켰다. 해외에서의 제품 정보와 평가는 물론 현지가격까지 훤히 알게 되었다. 발빠른 구매자들은 이미 해외에서 신품과 중고를 직구해서 사용하고 있었으며 제조사와 메일로 연락을 하기도 했다. 이제 오디오저널의 입지는 좁아져 있었다. 오디오 저널리스트들의 생존력과 존재감도 달라졌다. 좀더 해박해져야 했고 정보를 (최소한 소비자보다)일찍 입수할 수 있어야했고 무엇보다 특정 제품을 정확히 파악하고 판별해서 객관화시킬 수 있어야 했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수 밖에 없었다.
유튜브가 일반인들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한 건 대략 2010년을 지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유튜브는 인터넷이 바꾸어놓은 오디오 저널의 입지를 좀더 빠른 속도로 재편하고 있다. 여러 변화들이 있지만 큰 축을 살펴보면 기존의 리뷰가 고정된 포맷과 채널들을 통해서 판매자쪽에 좀더 무게중심이 실려있었다면 유튜브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로 구매자에 가까운 언어와 내용들로 트랜스폼되어 제품을 다루고 있다. 완벽하게 판매자의 의사와 무관한 리뷰를 하는 게 반드시 바람직한 흐름은 아니지만 언어와 포맷의 변화는 좀더 객관적인 제품리뷰에 합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영상리뷰가 가져온 변화
유튜브로 대별되는 15분 내외 분량의 영상 컨텐츠는 글로 쓰고 읽던 리뷰를 단편적으로 영상으로 변경하는 개념이 아니라 포맷은 물론, 컨텐츠의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영상 리뷰어는 기존의 글로 쓰는 필자들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새로운 포맷과 표현방식으로 제품 지식이나 오디오경력과 무관하게 유튜브 이력에 따라 새로운 리뷰어 그룹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컨텐츠 공급자로서는 컨텐츠 제작 방식, 리뷰어의 진행 포맷, 컨텐츠 플랫폼 등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시스템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영상저널의 장점과 단점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장점
단점
기타 글을 쓰는 필자는 어디에서 무슨 자세로 글을 쓰든 제약을 받을 일이 없으나, 카메라 앞에 모습을 나타내야 하는 유튜브 출연자는 외모나 차림새, 목소리 상태 등에 대한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 생긴다. 리뷰어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사실 제품 리뷰의 본론은 사실 음악별 시청리포트에 있는데 유튜브에서 이 음악에 대한 부분을 실제로 시청해가며 시연을 할 수 있다면 베스트인데 아직까지 그 시청곡과 허용되는 곡, 연주시간의 경계가 애매하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좀더 혁신적인 리뷰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판매자 - 구매자 - 평론가 3자 구도
유튜브가 바꿔놓은 저널 구도 중의 하나는 비전문가 그룹의 제품평가이다. 여하한의 노력으로 조회수와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이라면 굳이 고전적인 리뷰어들이나 전문적인 리뷰가 아니라해도 제품 공급자의 마케팅 채널로는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 내용이 함량미달이거나 오류가 있다 해도 구태의연한 리뷰보다 오히려 신선한 시선을 기대할 수도 있다. 종종 눈높이를 관찰해보면 구매자에게 그 정도의 정보 이상은 필요없을 경우도 많다. 소신있는 구매자일수록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잘 구분한다.
참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이상적으로는 전문적인 리뷰일수록 최대 다수를 위한 객관화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구매자 뿐만 아니라 공급자에까지 해당하는 얘기이다. 제품 시청기, 리뷰는 표면적으로는 구매자와 매체 혹은 리뷰어 사이에 일어나는 일로만 보여지지만 제품 리뷰의 수요자는 구매자 뿐만 아니라 공급자도 해당된다. 공급자 또한 그렇다. 대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일부 대형공급사들도 있지만 지속력이 크지 않은 비용을 들여 제품을 수입하거나 제작해서 매출을 일으켜야 하는 공급자에게도 제품 리뷰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문제는 평론가의 의식있는 평가작업이다. 무작정 칭찬이나 확인되지 않은 결함을 지적하는 일은 모두 제품과 브랜드를 죽이는 일이 된다. 길고 짧게는 결국 그런 과정을 빈번히 지켜보아왔다. 리뷰어가 되어 제품을 살펴보면서 정말 특기할 만한 점이 발견되면 누구를 위한 장점인지를 부각시키고, 결함이 발견되면 어떤 사용환경에서 그랬는지 리포트하면 된다. 일부 사용자에게 국한된 제품들은 여전히 고전 채널을 통한 리뷰, 혹은 제품이 있는 현장에서의 소수 대 소수의 커뮤니케이션만으로도 충분하다.
유튜브가 마련한 전기
영상기반 제품 리뷰가 확산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 오디오 저널의 히스토리와 생태에 대 해 서도 잠시 리뷰를 해보았다. 어느 시점 어느 곳에나 극단은 있다. 평론가도 평론가 나름이고 구매자도 구매자 나름이다. 태만하거나 고지식한 저널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지만 누구도 연연하지 않는 철없는 포스팅 또한 스스로 도태되어갈 것이다.
아직 피크에 이르지도 않은 유튜브가 주도하는 영상 저널의 시대는 희망적이다. 유튜브 자체가 일시에 많은 것을 바꾸어놓는 혁명적 방식이라서가 아니라 그간 저널이 잘 수행해오지 못했던 것들을 상반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23년차 오디오 평론가인 필자 또한 반성할 일이 많다. 오디오 기기의 발전과 더불어 구매자 그룹도 저변확대되고 분별력의 수준도 높아졌다. 오디오 리뷰어의 인식이 오히려 더딘 게 아닌가 싶다. 리뷰어의 입장에서 유튜브가 무언가 바꿔줄 것을 막연히 기대할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시대에서 드러난 현재의 문제들을 잘 살펴보고 방향을 확인해서 유튜브에 탑승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발전된 저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글과 사진이 그랬듯이 유튜브 또한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방식의 매체로 대체될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가 다르게 무언가 어딘가 바뀌어 가고 있을 유튜브를 잘 관찰해보자. 거기에 오디오 저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열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