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발매 시급합니다" 밤 잔치 밝혔던 '조선 인싸템' 사각유리등

조회수 2020. 9. 19. 0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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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굿즈’로 만들어 주세요!”


지난 6월, 문화재청 공식 트위터 계정이 올린 유물 사진 몇 장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 제대로 저격하는 이 예쁜 유물은 조선시대 왕실 잔치에 쓰였던 ‘사각유리등’ 입니다. 당장 카페에 걸어도 어울릴 것 같은 세련된 디자인에 많은 네티즌이 반했고 상품화 해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사진=문화재청 트위터(@chlove_u)

유리등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효명세자(1809~1830)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물건입니다. 효명세자는 비록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수백 편의 시를 남겼고 궁중 무용 창작에도 관여했으며 직접 노랫말을 지어 춤에 곁들이기도 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왕세자였습니다.


낮에 하던 왕실 잔치를 저녁에도 열기 시작한 사람도 효명세자였습니다. 효명세자가 밤 잔치를 시작하면서 어두운 곳에서도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야외 조명을 밝힐 필요성이 생긴 것이죠. 선선한 가을밤 우아한 잔치를 밝히던 사각유리등에 얽힌 이야기를 국립고궁박물관 문은경 학예연구원에게 들어보았습니다.

200년 됐는데도 그림이 선명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보존이 잘 된 건가요?


“사각유리등은 유리등 겉면이 아니라 안쪽에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안료와 유리의 접착이 약해서 잘못 건드리면 지워질 수도 있는데 안쪽에 그려 놓아서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물감의 성분을 박물관 보존팀에서 휴대용 x선 형광분석기로 분석했는데요. 원소마다 발생하는 형광x선 파장과 강도가 다른 것을 이용하여 종류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진사·연백·석황 등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각유리등은 어떤 식으로 사용했나요?


“주로 처마에 매달아 사용했습니다. 등 안쪽에는 초를 꽂았고요. 기록화를 보면 지붕 처마에 사각유리등을 비롯해 다양한 등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잔치에 사용된 유리등의 개수는 15~20개 정도인데, 이 때 유리등만 단독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양각등이나 비단등처럼 다른 종류와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유리에 그려진 그림 물감 성분을 분석한 결과 빨간색은 진사, 분홍색은 진사와 연백을 혼합한 것, 백색은 연백과 연분, 황색은 석황, 녹색은 양록, 청색은 감청으로 추정된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효명세자 이전에는 밤 잔치를 안 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요즘에야 술 마시고 노는 건 저녁 이후부터라는 인식이 있지만 조선시대 왕실 잔치는 훤한 대낮도 모자라 아예 아침 7시 경부터 시작됐어요. ‘좀 놀 줄 아는’ 사람들이라 궁궐에서도 해 뜨자마자 잔치를 열었나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실 잔치는 흥겹게 노는 자리라기보다는 절차와 격식을 지키는 ‘의례’였기 때문입니다. 왕의 권위를 보이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효명은 1828년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생신 기념잔치 때부터 ‘밤 잔치’를 절차에 포함시켰습니다. 기록화를 자세히 보면 낮 잔치 때도 촛대가 놓여있기는 하지만 장식용이라서 초에 불이 켜지지는 않았는데요. 밤이 되면 초에도 불이 켜지고 양의 뿔로 만든 양각등, 비단을 둘러 만든 홍사등롱, 사각유리등 등 여러 조명기구가 사용되었습니다.”

1901년 제작된 신축진찬도 병풍 일부 클로즈업. 궁궐 잔치에서 다양한 조명기구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이 유리등이 효명세자와도 연관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요즘으로 치면 공연기획자나 프로듀서의 자질이 뛰어난 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효명세자는 부모님인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서 잔치 때 공연할 무용의 종류와 순서도 직접 결정하고 전 과정을 총괄해서 지휘했습니다. 본 잔치 다음날 열렸던 뒤풀이 잔치는 이렇게 행사를 주관한 효명세자 본인이 주인공인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아쉽게도 아주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많은 기대를 받았던 인물이에요. 예술에 조예가 깊은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강단이 있었습니다. 순조의 명으로 3년 남짓 대리청정을 하던 기간에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었지요.


이 짧은 기간에도 서얼(양반가문의 자식이지만 첩에게서 태어난 자)의 관직 진출을 허용하는 등 인재 등용에 있어서 차별을 철폐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알면 알수록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이 많고 정치적으로도 성군의 자질을 가졌던 세자인 것 같습니다.”

잔칫상 양 옆에 놓인 사각유리등. 아기자기한 모양새 때문에 크기도 작을 거라 생각할 수 있으나 실물은 상당히 큰 편이다.

민간에서는 사각유리등을 쓰지 않았나요? 

“민간에서도 사용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민간에서 유리등을 사용했다는 그림이나 기록을 아직 발견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왕실 잔치 기록을 담은 의궤를 보면 밤 잔치 때 유리등을 배치했다, 유리등은 왕이 내린 물건이다 이 정도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홍사등롱과 비슷한 등인 청사초롱은 민간에서 사용하던 모습이 자주 발견되지요. 이를 토대로 유리등도 나중에는 민간에 전해지지 않았을까 추측 정도만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유리 때문인지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듭니다.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발매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각유리등 굿즈를 원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저희 고궁박물관이 매달 ‘큐레이터 선정 유물’을 하나씩 소개하는데, 사각유리등은 제가 골랐거든요. 저도 유리등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골랐는데 많은 분들이 같은 생각을 해 주셔서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사각유리등 정식 굿즈는 아직 없지만 박물관 기획팀에서 지난 6월 사각유리등으로 아크릴 램프를 간단히 만들어 퀴즈에 참여한 분들에게 추첨을 통해 나눠드리는 행사를 한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10월에 개최예정인 ‘궁중문화축전’에서 사각유리등을 미니어처 형태로 만들 예정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인기 있는 유물인 만큼 굿즈를 기대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제6회 궁중문화축전은 10월 10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리며 온라인으로도 진행됩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종묘와 사직단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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