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카니발..김혜수 배우도 추천한 그 영화 '더 헌트'

조회수 2020. 10. 8. 1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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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헤어전문매거진 그라피

김혜수 배우도 추천한 바로 그 영화
'더 헌트'

매즈 미켈슨 주연의 영화 '더 헌트'

중세시대 유럽 전역에서 횡행한 마녀사냥은 종교를 빌미로 공동체의 집단 광기가 빚은 핏빛 잔혹사였습니다. 수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고통과 죽음의 수렁에 빠뜨렸죠. 희생자의 대부분은 나이많은 여성 혹은 가진 재주나 미모가 뛰어나 주변의 시기와 욕망을 불러일으킨 이웃이었습니다. 마녀와는 1도 연관이 없었죠.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해 결국 교황청에서 지난 과오로 규정하면서 마녀사냥은 유럽의 가장 끔찍한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접어들어서도 마녀사냥은 여전히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의혹과 소문에만 휩쓸려 한 사람의 인생에 항소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유죄를 선포하는 랜선 심판. 우리가 그토록 애정해 마지않는 SNS와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구 하나 ‘병신’ 만들어 매장하는 건 일도 아니죠.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극한의 이기주의, 모두가 공범이라는 비열한 연대 안에 몸을 숨길 때만 안전하다는 위기의식이 낳은 씁쓸한 현실입니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2012년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마녀사냥의 가장 좋은 예시가 될 만한 영화입니다. 어린 소녀의 투정 섞인 거짓말에 한 남자가 피할 길 없는 오해와 증오의 덫에 걸리고 마는데요.영화는 그렇게 모두의 사냥감이 된 남자에게 세상이 얼마나 냉혹하고 지옥 같은지 신랄하게 보여줍니다.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호연은 숨 막히도록 압도적입니다.

그는 이 영화로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죠. 위태롭게 부풀어 오른 풍선이 터지듯 클라이맥스에서 참아왔던 울분과 미움을 쏟아낼 때, 반대로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침묵의 강물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주인공 루카스의 직업은 교사입니다. 원래 상급학교의 교사였지만 이혼 후 고향에 내려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죠. 주말이면 친구들과 사냥을 즐기고 밤새술을 마시며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던 그를 광기의 화형장으로 끌고 간 건 다름아닌 한 소녀였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클라라. 그녀의 아빠 테오는 루카스와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는 죽마고우였죠. 하지만 클라라의 거짓말이 두 친구뿐 아니라 작은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습니다.

그리고 절망은 계속된다

사실 악의를 품고 저지른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루카스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밀쳐낸 게 속상해서 투정 부린 것뿐. 그런데 문제는 하필 지어낸 거짓말이 선생님이 성기를 꺼내 보여줬다는 거였죠. 그 말을 전해 들은 원장 교사는 루카스가 어린 클라라를 성추행했다고 의심하고 최대한 중립자적 입장에서 진실을 확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의심은 비말을 타고 전염되듯 순식간에 온 마을에 퍼졌고, 클라라뿐만 아니라 마을의 많은 어린이가 루카스로부터 비슷한 추행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어이없는 사태로까지 이어집니다. 아무도 루카스의 절박한 외침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친구도, 동료도, 심지어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테오마저도 외면하죠.

다행히 경찰 조사에서 아이들의 공통된 진술에 큰 허점이 발견되면서 그의 무죄가 입증되지만, 루카스의 행운은 거기까지입니다. 무리로부터 추방당한 사슴처럼, 이제 루카스는 더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서로의 시시콜콜한 가정사까지 모두 공유하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그들은 비록 법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해도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린 자를 더는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죠.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왔지만 추악한 범죄자란 사실은 변함없다는 믿음 아래 그들은 모두가 똘똘 뭉쳐 단죄에 나섭니다. 이 마을을 지옥으로 만든 건 한 남자가 연루된 해프닝이 아니라 사리 분별을 망각한 공동체의 광기란 사실을 그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나쁜 병균을 몰아내듯 그를 외면하고 배척하는 데만 급급할 뿐이죠.

'더 헌트' 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개인에게 가하는 집단 린치가 얼마나 무지하고 비이성적인가를 낱낱이 고발합니다. 극중 클라라의 대사처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난” 상황에서 그들의 이성은 작동을 멈추고 야만으로 치닫습니다.

긴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온 루카스를 맞이한 건, 가식적인 환대와 날카로운 총성이란 사실은 그의 악몽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 조용히 오버랩됩니다. 대역병의 시대. 어쩌면 우리가 싸워야할 것은 공기 중에 떠도는 병균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의혹과 불안, 두려움 그리고 타인에 대한 혐오일지도 모릅니다.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더 헌트 The Hunt, 2012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

주연 매즈 미켈슨, 토머스 보 라센, 아니카 베데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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