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슈퍼히어로의 새로운 영역
조회수 2020. 8. 11. 08:40 수정
시간을 넘어서 가치를 입증하는 그래픽노블
오랫동안 슈퍼히어로들은 절대 선의 완전무결한 존재처럼 그려져 왔다. 하지만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나쁜 짓도 하고 사생활 문제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전통적인 슈퍼히어로를 뒤틀어 이들도 하나의 인간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시리즈가 나온 80년대 당시에는 새롭고 신선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새롭지는 않다. 이미 수많은 픽션에서 정의의 인물들이 겉보기와 다르거나 타락하는 요소가 있어 왔다. <왓치맨>은 슈퍼히어로 장르에 이런 소재를 도입한 것뿐이다.
스토리를 쓴 앨런 무어는 DC 코믹스가 인수한 찰튼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사용하려 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그래서 무어는 새로운 캐릭터를 사용한 대체역사물을 개발했다.
<왓치맨>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불완전하다. 오만하고 편협하며 광적이다. 로어셰크나 오지만디아스 등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가 모호하다. 닥터 맨해튼은 신적인 존재로 진화해버려 아예 선악의 경계를 벗어나버렸다.
<왓치맨>은 가벼운 내용이 아닌데다가, 그림을 그린 데이비드 기븐스가 페이지마다 9개의 컷으로 나누고 빼곡한 글씨로 채워 넣어 가독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호불호도 큰 편이다.
한편으론 이게 <왓치맨>의 장점이기도 한데, 당시 ‘애들이나 덜 성숙한 어른들이 보던 만화’를 ‘심오하고 철학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새로운 아트’의 세계로 끌어올린 명작이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에서 호평을 받으며 최고의 영문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어 만화의 영역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꽤 많이 팔렸다(고 한다).
결국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데, 잭 스나이더가 감독한 영화는 원작을 그대로 재현해놓으려 했을 뿐 재미까지 담진 못했다.
DC 코믹스는 수십 년이 지나 <비포어 왓치맨>이라는 프리퀄을 선보였다. 여러 작가들을 고용해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프리퀄에 참여하지 않은 앨런 무어는 이 시리즈들을 제작한 DC를 비난하며, 그 당시라면 몰라도 지금의 시대상에는 맞지 않으므로 좋을 것이 없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DC는 여기서 더 나아가 <둠스데이 클락>을 통해 DC 유니버스에 왓치맨을 끌어들였다. 수년 전부터 루머처럼 떠돌던 설정이었는데, 왓치맨 유니버스의 몇몇 캐릭터가 DC 유니버스로 넘어오고 말았다.
두 세계의 크로스오버를 기다렸던 팬들에겐 배트맨이 “로어셰크”와 대화하고 슈퍼맨이 닥터 맨해튼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선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DC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리부트되면서 잃어버린 5년의 시간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왠지 제작진이 비난을 많이 받은 ‘뉴52’ 세계관 리부트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HBO에서 원작 이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왓치맨> 드라마 시리즈가 호평을 받으며 많은 상을 받고,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만도 26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관련작품 중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기븐스가 참여한 드라마가 거둘 성과는 어느 정도일지 기대된다. 슈퍼히어로 실사 작품 중 최고의 성공작이 될 수 있을까? 앨런 무어의 말과는 달리, <왓치맨>은 아직 다 열지 않은 보물상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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