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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과 <완벽한 타인>을 탄생시킨 그녀

조회수 2020. 7. 30. 10: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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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배 세 영

안녕하세요, 배세영 작가입니다. 제가 시나리오 작가로 살아온 지 14년 째 접어드는데, 이렇게 레전드매거진을 통해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참 기뻐요. 저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의 잇따른 흥행으로 인해 한창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작품들이 잘 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데, 저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큰 행운이었어요. 하지만 기쁜 것도 잠시, 쏟아지는 연락들을 응대하고 받아들이고 거절하고 수락하는 와중에 진행 중인 작품들을 계속 소화해 가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얼마 전 마무리한 두 작품은 지금 촬영에 들어갔답니다. 아마 빠르면 내년 여름이나 가을 즈음에 제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스텔라>와 <인생은 아름다워>가 개봉하게 될 거예요. 두 작품 중 어떤 작품이 먼저 세상에 나오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작가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열 편이 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가 개봉도 했는데, 참여작 중 크게 흥행한 영화는 없었어요. 때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고, 가끔은 이 길이 제 길이 맞는 건지 고민도 많았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예능프로그램 SNL KOREA에 작가로 잠깐 참여하여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기획했는데, 그 코너가 유명새를 타면서 제 소개가 시나리오 작가 배세영이 아닌 SNL 여의도 텔레토비 작가 배세영으로 나가는 거예요. 14년 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살았는데 예능작가로 소개되는 게 참 슬펐죠. 예능 작가도 물론 좋은 일이고 멋진 일이지만, 본업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들이 잇달아 흥행하고 인터뷰도 많이 다니면서 다시 제 이름을 찾은 것 같은 상황이 되었어요. 예전에는 어디서 누군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작가라는 말이 입에서 잘 안 떨어졌어요. 분명 제가 한 작품들을 못 보셨겠지 싶어서 그냥 글 써요.라고만 했는데, 요즘에는 당당하게 시나리오 작가라고 이야기한답니다.

글을 쓰게 된 계기


어릴 때부터 언어 습득이 빠른 편이었어요. 다섯 살 때 한글을 다 익혔고, 항상 책을 읽었어요. 난 이다음에 크면 꼭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고 항상 생각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 꼬마 아이였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주셨던 그림일기였어요. 선생님께서 친구의 일기에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코멘트도 길게 써주셨는데 제 일기에는 코멘트도 짧고 칭찬도 많이 안 해주시기에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어린 마음에 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봤어요. 비교를 해 보니 왜 그런 지 알겠더라고요. 친구는 그림일기 안에 긴장도 있고, 기쁨도 있고, 기승전결이 있는데 저는 단지 현상만 나열했던 거예요. 집에 왔다. 밥을 먹었다. TV를 봤다. 끝. 친구의 일기를 보면서 이렇게 쓰면 선생님이 재미있어하는구나 싶어서 저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서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됐어요. 당시에는 폭력적인 가장과 이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가 참 많았는데, 저도 거기서 소재를 가져왔죠. 그림일기의 첫 줄은 ‘오늘도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였어요. 아빠가 엄마를 때리면서 ‘돈 가져와 xx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저는 옆에서 ‘아빠 제발 그만해!’라며 울고. 장롱을 뒤져 돈을 꺼내면 엄마가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고. 이런 이야기들을 드라마를 모티브로 마치 제가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썼어요. 그렇게 써서 냈더니 선생님이 기겁을 하시는 거예요. 오늘도..? 여태 이래 왔다는 거잖아.라고 생각하셨겠죠. 게다가 그림일기니 그림까지 자세하게 그렸어요. 화투장의 팔광을 그려 아빠가 도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빠가 엄마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끌고 가는 모습도 그리고. 그걸 보고 담임선생님이 어떻게 안 믿으셨겠어요.


그러고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어요. 그렇게 맞던 엄마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집을 나가고, 나는 엄마가 나간 방향을 향해 뛰어가면서 엉엉 울고, 노점에서 핫도그를 팔던 핫도그 아줌마가 나를 안고 와서는 손에 핫도그를 하나 쥐어 주시고, 종일 굶고 배가 고파 집 근처 일미식당을 서성이니 아주머니가 밥을 해주시고, 하굣길에 저를 본 미용실 아줌마가 엄마 아직도 안 들어왔냐고 물어보면서 제 머리를 땋아주시고. 등등. 매번 제가 일기장을 제출할 때마다 선생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답니다. 나중에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엄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집에 온 엄마가 아빠에게 싹싹 빌었다. 이렇게 계속 써 내려갔는데, 참다못한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전화를 해서 아버지에게 당장 학교에 오시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영문도 모르고 학교에 끌려온 아버지에게 제 일기장을 보여주시면서 이런 집에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냐고, 당신을 고소하겠다고 하셨죠. 일기장을 본 아버지는 너무 놀라서 까무러칠 뻔하셨대요.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저는 크게 혼났고, 하우스용 대나무로 엉덩이를 여러 대 맞았어요. 그 뒤로 일기를 쓰면 아버지에게 검사를 받고 선생님께 제출하면서 다시 재미없는 일기가 시작되었죠. 한바탕 그런 소동이 있고 난 후, 선생님께서 저를 조용히 불러서 너는 작가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부터 마음껏 거짓말을 하라면서 문예반에 저를 넣어주셨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신나게 글짓기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서울로 전학을 갔어요. 엄마 아빠와 떨어져 이모 댁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매일 소설을 썼어요. 하루는 제가 쓴 소설을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보여줬는데, 읽어보더니 너무 재미있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돈 받을 생각도 없었는데 누가 먼저 볼지를 갖고 서로 싸우길래 50원을 먼저 내는 사람이 보라고 정해줘서 순서가 생겼죠. 그렇게 계속 연재를 했던 게 글 쓰는 연습의 시작이었어요.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자라서 작가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 글을 쓰면 앞으로도 마음껏 글을 쓸 수 있겠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멋진 글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일관되게 갖고 있었죠.

시나리오 작가가 되다


그렇게 원하던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소설과 현대 문학을 전공했어요. 시나리오를 전문적으로 공부해 본 적은 없고, 커리큘럼에 시나리오와 비슷한 것도 배운 적이 없어 그런 세계가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다른 과에 재학 중이던 선배가 제게 문예창작과 출신이니 글을 좀 쓸 줄 알겠네 라면서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한 번도 안 배워봤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보니 시나리오를 쓰는 형식이 있었어요. 형식에 맞춰서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공간으로 나눠서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쓰게 된 첫 작품이 2007년에 개봉한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게, 난생처음 쓴 그 작품이 영화화가 된 거예요. 영화가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나 싶어 황당할 정도로 행운이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소설과 현대 문학 전공이 저와 안 맞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못 쓴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순수문학이 어마어마한 대세를 이룰 때였는데, 저는 이와는 상반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했거든요. 소설을 써서 제출하고 보면 다른 친구들은 대사 한 줄 없는 열 페이지짜리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멋진 글과 어휘들을 써내는 반면 저는 늘 대사가 가득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동화 같은 이야기를 써서 갔어요. 교수님과 학과 친구들은 그런 저를 너무 한심해하고, 그때만 해도 나는 왜 묘사를 못 할까. 왜 대사를 쓸 때가 가장 즐거울까 자책만 했어요. 대사를 쓸 때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내 길이 이거였구나, 나는 대사를 쓰는 사람이고 이걸로 나도 즐겁고 사람들도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과를 잘못 갔구나 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거죠. 그때를 계기로 지금까지 저는 계속 시나리오 작가로 살아가고 있어요.

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


그런데 <미나문방구>가 개봉을 하면서 정말 큰 시련을 겪었어요. 표절시비에 휘말린 거죠. 알고 보니 비슷한 제목의 다른 웹툰이 있었어요. 읽어보니 주인공이 문방구를 운영한다는 소재만 동일하고, 장르와 내용은 전혀 달랐어요. 표절이 아닌데 표절시비에 휘말리니까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한번은 제가 그 웹툰 작가에게 장문의 편지와 함께 초고부터 지금까지 작업해 온 모든 내용들을 전부 보냈어요. 이걸 보시면 어떻게 이야기를 발전시켜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을 테니 한 번만 봐달라고요. 답장은 오지 않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는 여론에 의해서 표절을 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저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 이름에서 따왔는데, 하루는 아들이 하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 표절했다며?’라는 거예요. 반 애들이 전부 그렇게 말한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너무 슬펐어요. 제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표절이 뜨는 상황이었죠. 차라리 저를 고소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병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작품은 개봉하자마자 평점 테러와 악플이 쏟아졌습니다. 더 힘들었던 건 저에 대한 명예훼손이었는데 알고 보면 이 작가는 다른 작품들도 표절이라고 하면서 제 지난 작품들을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보다보다 참기 힘들어 고소를 하기 위해 경찰서 앞까지 갔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10 대일 텐데, 그 10대들에 의해서 어린 제 아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그래서 고소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길로 활동을 다 접었어요. 더는 시나리오 작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잊고 지내며 육아에 전념하려고 일부러 둘째 아이를 가졌어요.


그런데 참 우연하게도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어머니께서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해져서 2주 안에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때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원치 않았던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한 작품 받을 돈으로 세 작품을 써줄 테니 돈을 먼저 달라고 해서 계약금을 먼저 받아 어머니께 돈을 드렸어요. 그런데 다시 시작하려니 또 표절이라고 하겠지 싶어서 너무 쓰기가 싫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무조건 원작이 있는 것만 쓰자. 그럼 적어도 표절 이야기는 안 하겠지 싶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작품들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단기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완성한 작품들이 바로 <극한직업>과 <완벽한 타인>이에요. 그랬는데 거짓말같이 이 작품들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한 거죠. 지금도 어안이 벙벙해요. 지난 14년간 힘들여 썼던 작품들은 결과적으로 잘 안되었는데, 단시간 내에 써 내려간 작품들이 이렇게 잘 되니 너무 기뻤고, 한편으로 다시 욕심이 생겼어요. 어찌 되었건 원안이 존재하는 작품들이니 잘 돼도 본전인 느낌이더라고요. 저도 제가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인정받고 싶어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쓴 작품들이 이제 막 촬영에 들어간 <스텔라>와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평소에 글을 쓰기 위해 하는 노력들


저는 글을 쓰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워커홀릭이에요. 잠시라도 글을 안 쓰면 불안하고, 뭐라도 읽고 있어야 맘이 놓여요. 글이 안 써지거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사람들을 만나요. 누가 되었건, 어떤 약속이 되었건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요. 또는 앉혀놓고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발전이 되는 게 있죠.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이야기의 큰 틀을 짜기도 해요. 이렇게 글을 쓰지 않을 때에도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편이에요.


취미는 청소예요. 작업을 할 때는 할 수 있는 만큼 어질러두었다가, 작업을 처음 시작하거나 끝낼 때는 서랍 속까지 전부 뒤져서 싹 다 버리고 차곡차곡 정리해서 깨끗하게 해 둬요. 별거 없죠?

출처: 레전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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