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숨겨진 필름카메라 박물관

조회수 2020. 10. 21. 09: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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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 필름카메라들의 향연

연남동 끝자락의 작은 필름카메라 숍

엘리카메라

첫 방문, 잠시 그 근처를 헤맸다. 두리번거리다 찾아낸 파스텔 톤의 예쁜 간판 앞에서 이 곳이 연남동이 맞나 싶어 다시 두리번거렸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다 발길 닿는 대로 들어선 골목 어귀에서 만난 앤티크 소품샵이 생각났다. 혹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이 도착한 1920년대 비 오는 파리의 밤거리에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카메라 가게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강 대표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필름 카메라 컬렉션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꿈꿔왔다. 콜렉터 시절, 가끔 유리장 안에 진열되어 눈으로만 봐야 했던 카메라들에 대한 아쉬움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그는 언젠가 컬렉션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열면 꼭 모든 카메라를 손님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하기로 다짐했다. 


엘리카메라가 1800년대에 만들어졌으며 세계에 몇 대 남아 있지 않아 희소가치가 남다른 카메라들도 하나하나 직접 만져보고 셔터를 눌러볼 수 있는 체험형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이유였다.

엘리카메라 연남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만한 주름막이 빨간색인 빈티지 카메라나 영화를 촬영할 때 쓰던 필름 카메라 등 신기한 카메라들도 많아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강 대표는 연남점에서건 연희점에서건 방문객들에게 특정 기종을 먼저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카메라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주지만, 취향은 저마다 제각각이기에 방문 객들이 구석에 진열된 카메라들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중 자신의 인생 카메라를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공간의 취지에 더욱 어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레트로 열풍과 셀럽들의 사용으로 필름 카메라가 유행을 타면서 엘리카메라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했다. 카메라를 판매하는 연희 점은 오픈하자마자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그 주에 입고된 카메라가 모두 판매되는 일들도 많아서 종종 뒤늦게 카메라를 구매하러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강 대표는 사람들이 필름 문화에 관심을 갖고 카메라를 구매하는 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나, 한편으로는 필름 카메라가 유행 아이템으로 간주되어 한시적 소비품으로 소모되는 것을 염려했다. 그는 필름 카메라를 돈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 매력을 발견한 이들이 자기 삶의 행복으로 연결하길 바라고 있었다. 


강 대표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카메라가 묶여있는 재화가 아닌 현재의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담아내는 도구로서 쓰이길 바란 것이다.

“필름 카메라를 매개로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생성되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잠깐의 반짝임으로 사라지는 유행보다는, 필름 카메라가 나에게 주는 가치를 믿는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필름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엘리카메라 대표 엘리(강혜원) 인터뷰]

직원들이 강 대표님을 대표님이나 사장님이 아닌 엘리님이라고 부르던데, 이유가 있나요?


직급을 부름으로 인해 생성되거나 굳어지는 분명한 수직적 상하관계 혹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엘리카메라 에서는 굳이 만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엘리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부터 사용하던 저의 영어 이름이에요. 오랫동안 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보니 그 이름이 친숙해져 직원들에게도 저를 그렇게 불러달라고 이야기해왔죠. 엘리라는 이름이 참 좋아서 한때는 한국 이름도 강엘리로 개명할까 싶었지만,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니 그대로 두기로 했답니다.


방문한 손님들에게 좀 더 신경 써서 소개하는 카메라가 있나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개인사가 존재하듯, 필름 카메라들도 저마다의 역사와 사연이 있어요. 예를 들면 너무 좋은 카메라임에도 다른 회사들과의 마케팅 경쟁에서 밀려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1년만 생산되다가 단종된 카메라들 같은 경우 극소수의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전 그런 카메라들을 대중에 소개하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필름 카메라를 생산하는 회사는 현재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렇죠. 1900년대 초중반에 만들어진 카메라들은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종결했어요. 가장 최근까지 필름 카메라를 만들었던 곳은 라이카인데, 라이카도 현재는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죠. 한마디로 필름 카메라를 만드는 회사는 지금은 전 세계에 단 한 군데도 없어요.


엘리카메라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매개로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생성되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잠깐의 반짝임으로 사라지는 유행보다는, 필름 카메라가 나에게 주는 가치를 믿는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필름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여기서의 경험으로 인해 삶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누군가는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눈 떠 본인의 전공을 바꾸기도 했고, 암 수술 후 저희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는 분도 계셨어요. 


한 번은 90대의 할아버지 한 분이 신문을 보고 저희 가게 지도를 프린트해 무더위에 한참을 헤매다 찾아와서는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하셨던 카메라를 기증하고 가시기도 했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감으로써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죠. 


이처럼 엘리카메라의 존재로 인해 생성되는 따뜻한 이야기들은 저에게 매번 감동을 줘요. 그럴 때마다 필름 카메라를 통해더 많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의욕도 생기고요.

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로 흔히 덕업일치라는 말을 쓰잖아요. 덕업일치를 이룬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덕업일치에 어마어마한 뭔가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이렇게 삶을 전부 쏟아도 견딜만하고 괜찮아요. 만약 제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라면 잠도 많이 못 자고 시간을 쪼개어 살며 일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 일은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가능한 거죠.

 

꿈을 실현하거나 큰돈을 버는 걸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내 열정과 시간을 전부 쏟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덕업일치의 진정한 의의가 아닐까요. 그리고 카메라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저에게 영감을 주고 기쁨이 되죠. 참 좋은 일이에요. 힘들 때도 있지만 엘리카메라를 계속 유지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건, 그런 분들을 만나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엘리님은 꿈이 뭔가요?


오래전부터 저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체험시켜주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꿔왔어요. 그러니 전 제 꿈을 이뤘네요. 비록 계획했던 것보다 3년 정도 늦어졌지만 엘리브러리도 올해 드디어 오픈할 수 있게 되었고,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제 꿈은 앞서 말씀드린 엘리카메라의 궁극적인 목표와 일치해요. 필름 카메라가 유행처럼 번지다 사라지지 않도록,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는 문화의 매개로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를 위해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엘리카메라를 가꿔나가겠습니다.

출처: 레전드매거진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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