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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

조회수 2020. 10. 16.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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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대를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 카말라 해리스는 표정이 풍부하다. 어제 토론회를 보니 이렇게 표정이 풍부한 건 정치에서 불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펜스 부통령이 트럼프와 똑같이 거짓말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하는 것을 보며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짓는데, 이걸 보고 “표정은 숨길 수 없다” “잘난체한다(smug)” 하는 식의 트위터 반응이 넘쳐났다.


반면 펜스는 시종일관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다. 이걸 본 평가는 주로 “대통령답다(presidential)”하다는 반응. (트럼프랑 너무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대평가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는 내용을 보면 ‘차분한 트럼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표정이 풍부한 건 사실 공감 능력이 풍부한 것일 수도 있다.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지만. 바이든과 해리스가 토론회에서 상대방을 보지 않고,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보고 미국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듯한 순간이 잘 먹힌 것도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거다. 


그런데 똑같이 표정이 풍부해도 남녀 정치인은 다른 평가를 받는다. 표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해리스가 토론 내내 끼어드는 펜스에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제가 얘기하고 있어서요(I’m speaking).”이라고 한 건, 아마 나름 리허설한 것으로 보인다. 펜스를 압도해야 하지만 압도하는 듯한 이미지는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녀 유권자들의 반응에도 차이가 있다. 부통령 후보 토론 후 “누가 이겼나” 설문조사를 했는데 남성 유권자들은 해리스 48%/ 펜스 46%, 여성들은 해리스 69% 펜스 38%로 답했다. 즉 똑같은 토론을 봤는데도 남자들이 해리스에 대해 평가가 박했던 거다.

카말라 해리스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 별로였나 생각을 해보니 나조차도 ‘당당하고, 취조하는 말투이며, 표정이 풍부하고, 똑 부러지는’ 여성 정치인이 같은 성격의 남성 정치인에 비해 호감도가 떨어졌던 것 같다. 정치인은 어필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똑똑하고 말 잘하고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 정치인은 인기가 없다. 힐러리 클린턴이 딱 그랬다.


사실 부통령 후보 토론회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예전 대통령 후보 토론 때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팩트로 계속 공격했던 것, 특히 그때의 태도가 계속 맴돌았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젊은 여자가 싸가지가 없다”는 것 때문에 그다음 날 보수언론으로부터 뭇매 맞았던.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인데, 지금 우리 정치를 보더라도 썩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특히 여성 정치인들은 옷을 뭘 입고, 표정이 어떻고, 말투가 어떻고… 이런 게 더 많이 평가받는다.  


(2020년에도 그런 사례가 1톤 트럭으로 퍼주고도 넘친다!) 여성을 콘텐츠로 평가하지 않고 겉모습으로 평가하는 거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카말라 해리스는 검사 출신이라서 취조를 잘하는데 이런 이미지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잔소리하는 엄마, 깐깐한 교장 선생”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씌워 개그 소재로 삼는다.


물론 대선 토론은 겉모습이 거의 전부다. 소위 ‘사운드바이트(soundbite)’라고 불리는, 한두 줄의 펀치라인이나 비주얼에 큰 영향을 받는다. 케네디와 맞붙었던 닉슨이 땀을 흘리는 모습이나, 레이건이 상대방 후보가 “나이가 많다”며 공격하자 “상대방의 경험 부족을 나는 지적하지 않겠다”는 펀치라인. 클린턴과 토론에 나선 조지 부시가 시계를 보며 뭔가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모습 같은 게 수십 년이 지나도 대선 토론 시즌이 되면 뉴스 분석에서 나온다. 


표정이나 말투가 콘텐츠보다 더 주목받은 건 오래되었지만, 이젠 ‘윌유입닥쳐주시겠음?(Will you shut up man)’ 밈(meme)이 바이든이 이야기한 정책 콘텐츠보다 더 기억에 남게 되는 소셜 미디어의 시대다.

그래서 정말 대통령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도 있는 해리스는 당분간은 ‘포커페이스’ 하는 법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그렇게 된다면 표정과 감정, 공감 능력 풍부한 그의 원래 모습 그대로,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의 기회가, 여성이 직접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에게 물려받게 되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어쩌면 시대를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타계한 ‘페미니스트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보자. RBG는 하버드 법대 시절 학장의 “남자 대신 이 자리에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란 질문에 “이 학교에 다니는 남편의 일을 더 잘 이해하려고”라고 답했던 “조신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시대의 물결을 탔고, 시대를 바꾸었다.


결론. 카말라 해리스가 대통령이 될지 지켜보자. 그리고 그게 어떻게 성 평등 인식을 바꾸는지 보자.


원문: 홍윤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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