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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템] "반교"는 어떻게 대만 문화를 게임에 녹여냈나?

조회수 2020. 3. 12. 14: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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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의 반응이다"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한 대만의 공포게임 <반교>는 수많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많은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이 게임의 시사성이었다. 1960년대 계엄령 치하 대만의 스산한 풍경을, 게임은 공포 장르의 문법에 맞춰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이 게임 한 편 덕에 전에 몰랐던 대만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어떻게'다. 6명의 20대 젊은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핍진성 가득한 작품을 빚어낼 수 있었을까? 한 국가의 문화와 역사를 게임에 녹여낸다는 무거운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이들의 고민과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이하는 <반교> 제작사 레드 캔들 게임즈의 PR 디렉터, 티프 리우(Tiff Liu)가 지난 2017년 가마수트라를 통해 공개한 포스트모템의 번역본이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게임사들이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 제작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글이 여러분께,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게임'이라는 쉽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수많은 개발자와 지망생들에게 작게 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디스이즈게임 이준호 기자

※ 이 기사는 가마수트라와 디스이즈게임의 기사 제휴에 의해 제공되는 것입니다. / 편집자 주​​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우리의 데뷔 타이틀, 2D 심리적 공포 게임 <반교>가 스팀에 출시됐다. 게임 출시 후 우리는 미디어와 플레이어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있었다. 대만 언론은 이런 공포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궁금해한 반면, 외국 언론은 게임 속에서 소개된 대만의 전통 문화(folklore)에 흥미를 느낀 듯 했다.


일주일 후, 우리 6명은 잠시 모든 혼돈으로부터 멀어져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우리는 그저 게임 제작을 즐기는 개발자들의 모임일 뿐이었으니까. 되돌아보니, <반교>의 제작에는 많은 노력과 실패가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가마수트라에 공유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은 불과 몇 년 전에 시작됐다.

<반교>는 '커피 야오'(Coffee Yao)의 아이디어였다. 커피는 늦은 밤 산책과 약간의 향수(nostalgia)를 즐기는 사람이다. 때때로, 1990년대의 기억이 마치 파도처럼 그에게 밀려왔다. 도교 사원의 향 내음, 뉴 웨이브 시대의 대만 영화, 길거리 음식의 맛, 장갑 인형극의 소리와 비주얼, 그리고 학창 시절의 기억들. 그야말로 대만 문화가 꽃피운 시기였다.


한 명의 게이머로 성장하며, 그는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일본풍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을 즐겨했다. 대만 문화를 중심으로 한 게임이 아직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대만의 분위기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했다. “대만 전통 문화로 게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 당시 커피는 탄탄한 계획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디어만큼은 그의 뇌리에 줄곧 박혀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4년, 그는 마침내 <반교>의 프로토타입을 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우리들 6명이 이어졌고, <반교>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게임을 개발하는 내내 우리를 괴롭힌 질문이 하나 있다. "이걸 서양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까?" 대만/동아시아 문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서양 플레이어들의 이해와 수용이 중요했다. 현지화는 개발의 핵심이었고, 레벨 디자인과 번역 과정에서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동아시아 문화를 게임에 성공적으로 이식하기 위해, <반교>는 2년의 개발 과정 중 4번의 큰 조정을 거쳤다. 원래 설정을 거의 뒤엎는 수준의 조정도 있어 우릴 거의 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을 보니, 이 모든 노력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래에서는, 우리의 분투와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 전략 설정 - 문화를 평평하게(flatten) 만들자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비중국어 화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적인 요소들을 다소 밋밋하게 만들기로 했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 우리는 문화적 이해를 요구하는 퍼즐 디자인을 가지고 몇 차례 논쟁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게임에 사용된 종교 의례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달랐다. 제단에서 무언가를 태울 때, 향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해의 불일치가 있다는 것, 즉 대만 사람끼리도 싸우는데, 어떻게 서양 플레이어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문화의 장벽이 스토리텔링과 게임플레이를 방해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겨우 3~5 시간의 게임플레이를 통해 한 나라의 문화를 전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우리의 의도 역시 문화 그 자체를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대만적인 요소를 담은 게임을 만드는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간단한 것이 아름답다”(less is more)는 황금률을 따르기로 했다. 전통적 문화 규범을 그대로 퍼즐 디자인에 적용하는 대신, 논리적 사고라는 퍼즐의 본질에 집중했다.


대신 우리는 문화 요소를 여러가지 기호나 상징으로 바꾸고, 게임 속 설정에 숨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문화적인 기호들을 퍼즐을 위한 도구, 짧은 메모, 배경 음악, 설정 속에 녹여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시각 및 음성 기호들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며 게임 속 분위기를 강화했다. 만약 플레이어들이 이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일부는 게임을 해본 후에 그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스스로 찾아나설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옷이나 건축물의 디자인은 1960년대 대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을 줬다.

자, 이론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으니,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가보자.


# 레벨 디자인 -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례 1. 문화를 소개하는 도구로서의 "일지"


일반적으로 공책은 다양한 종류의 게임에서 유용한 도구로 간주되고, <반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반교>에서 "일지"(journal)는 게임의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플레이어가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지는 게임에서 힌트와 메모(cues and notes),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플레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여러 개의 쪽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 중 일부는 플레이어가 생존하거나 퍼즐을 풀도록 도와주는 힌트(큐)에 해당하며, 이외의 것들은 문화 일반과 게임 속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메모다.

힌트: 망량에 대한 정보와 생존법
메모: 계엄령 시기의 학교 공지

사례 2 : 게임 메커닉에 민속/지역 신앙을 적용하기


처음부터 우리는 공포 게임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따라서 다른 모든 공포 게임과 마찬가지로 '점프 스케어'나 무서운 괴물 같은 것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했다. "문화와 공포 게임의 메커닉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우리는 괴물이나 악령 같은 것들이 흔히, 그리고 상세히 묘사된 동아시아 민속과 신화를 공부했고, 이를 게임 속에 쉽게 녹여낼 수 있었다.


망량

사람을 먹는 해골 형상의 괴물인 망량은 수많은 아시아 설화에 나타나는 유명한 귀신이다. 우리는 망량을 게임 속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괴물로 구현했고, 대만 민속에 기원한 두 가지 생존 방식을 게임 메커닉으로 삽입했다.

일반적으로 제삿밥은 죽은 자들에게 작별 인사로 올려진다. <반교>에서는 망량이 플레이어를 쫓지 못하도록 주의를 돌리는 데 사용된다.
동아시아 설화에서, 강시로부터 당신의 존재를 숨기는 방법은 숨을 참는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망량으로부터 도망치려면 플레이어는 숨을 참은 채 조용히 걸어서 지나쳐야한다.

흑백무상

흑백무상은 민속 신앙에서 죽음의 사자로 묘사된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 각각은 깃털 부채와 나무 부적을 손에 들고 있는데, 이들은 퍼즐을 해결하는 아이템으로서 플레이어가 다음 레벨에 도달하게 해주는 열쇠로 등장한다.

문은 잠겨있고, 무언가 빠져있다. 퍼즐의 수집이 완성되면 문이 열리도록 되어있다.

사례 3. 게임 내러티브에서 종교 의식의 구현


제례(ritual)는 문화의 중요한 일부다. 우리는 종교 의식 역시 게임 속 아이템으로 녹여내보기로 했다. 처음엔 쉬워보였다. 단순히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서술하기만 하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종교 의식은 우리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수정했다.


지전 (Spirit Money)

도교의 제사 중에는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과 단계가 있다. 맨 처음에 우리는 종교 의식을 묘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 냈다.

하지만 데모 테스트를 수행한 결과 이러한 예시는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았다. 글로 된 설명은 다소 복잡했고, 더 나은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는 약간의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다음과 같은 결과물을 얻었다.

"간단한 것이 아름답다"라는 황금률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의식 전체를 보여주려고 했던 원래 계획을 폐기했다. 대신 의식의 일부, 즉 지전을 태우는 과정의 표현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게임 서사의 일부로 녹여낼 수 있었다.


교배 (筊杯)

도교 사원에서 교배는 종종 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도구로 쓰인다. <반교>에서 교배는 플롯을 가속하는 장치로서, 사랑, 미래, 가족에 대한 레이의 우려를 나타낸다.


교배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우리가 처음 만든 것은 아래와 같았다.

앞선 예시와 마찬가지로 글자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대만인 친구조차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정도였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간단한 것이 아름답다"는 원칙이 또 적용됐다. 글로 된 묘사를 가능한 줄였고, 쪽지는 상호작용 가능한 시각적 연출로 대체됐다.

사례 4. 레벨 디자인에 대중 문화 활용하기


문화에 따른 경험(인지 방식)의 차이는 현지화에 있어 끊임없는 딜레마였다. 개발 초기부터 우리는 결국 두 그룹의 플레이어와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만 문화를 이해하는 현지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외국인 플레이어들. 대중 문화를 활용할 때도 같은 문제가 일어났다. 수많은 논쟁과 토론 끝에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문화적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4월의 비 는 1930년대 식민지 시기 널리 알려진 대만 노래 4곡을 모은 음반인데, 계엄령 시기에는 금지곡이었다. 여기 담긴 노래 중 3곡이 라디오 퍼즐의 디자인에 사용됐다. 서로 다른 방송주파수에 맞추면 각 노래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플레이어는 다른 시간대로 보내지는 방식이었다.

망춘풍 (望春風) (봄바람을 바라다)

첫번째 곡 망춘풍 은 레이의 망가진 가정에 대해 말해준다. 

사계홍 (四季紅)

사계홍은 원래 유혹의 의미를 담은 밝은 멜로디의 노래다. 이 곡을 통해 레이의 아버지가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려 했다.

월야추 (달밤의 그리움)

가슴 아픈 사람들의 우울한 멜로디를 담은 세번째 곡 월야추는 레이가 낭만적인 추억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다만, 뒷맛은 공허하고 씁쓸하다.


모든 곡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각각의 시간대에 배치되어, 가족과 연인에 대한 레이의 감정을 강조해준다. 레트로한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Lo-Fi 사운드 효과를 적용하기도 했다. 일부 대만 플레이어들은 친숙한 멜로디를 들으면서 노래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 한편, 보통 플레이어들은 노래가 이국적이고 신선하다 생각할 것이다. 이들은 노래의 배경 이야기는 모르지만, 노래가 전하는 감정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인형극

예로부터 인형극은 중요한 놀잇거리 중 하나였고, 오늘날에도 소수에게는 여전히 인기있는 놀잇거리다. 다만, 1950년대부터 대만 정부는 인형극을 "애국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사용했다.


이러한 대중문화를 레벨 디자인에 도입하기 위해, 우리는 꼭두각시를 퍼즐 해결의 도구로 활용했다.

무대에서 인형이 사라져있다.
퍼즐이 완성되면, 참수된 인형에서 열쇠가 떨어져 플레이어가 다음 레벨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레벨 디자인의 딜레마와 별개로, <반교>의 제작에 있어 번역도 역시 복잡한 문제였다. 싸구려 번역은 게임을 즐기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게임을 망치는 나쁜 번역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음 부분에서는 화제를 번역의 문제로 돌려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 번역 오류와 우리의 전략


참고로 말하자면, <반교>의 원래 대본은 1960년대 대만이라는 배경에 맞춰 고전 중국어, 현대 중국어 및 현지 방언이 섞여있었다. 이런 대본을 번역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인디 개발사로서 우리에게는 자원이 부족했고, <반교>를 여러 언어로 번역할 여유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목표를 낮게 잡고, 번역의 양보다 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때문에 우리는 원본인 중국어 외에는 오로지 영어 현지화만 진행했고, 그것만이라도 잘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공동 창업자인 빈센트 양(Vincent Yang)이 영어-중국어의 이중언어 화자였다. 빈센트는 번역 품질을 검수하고 번역자와 소통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덕분에 가독성 기준을 충족하며 원본 맥락에 가까운 영어 버전을 출시할 수 있었다.


사례 1. 시나리오에 맞는 대화 번역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 할 때, 번역자가 종종 겪게되는 문제 하나는 원래 의미에 딱 맞는 어휘가 없다는 것이다. <반교>의 경우도 그랬다. 따라서 우리는 단어 단위로 번역하는 대신, 원래 대본의 분위기와 감정에 중점을 두기로 결정했다.


노파와의 대화

<반교>에서 우리는 대만어(중국어가 아니라)만 할 줄 아는 노파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다. 중국어를 제외하고, 대만어는 대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언이다. 노파의 대사를 영어로 번역할 때, 첫 아이디어는 특정 지역의 방언으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어 방언은 너무 다양했고, 모든 플레이어에게 보편적인 방언을 딱 하나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고어(Old Enlgish)로 번역하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번역 초안이 나왔을 때, (영어-중국어 이중언어 화자인) 빈센트를 포함해 팀원 중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가독성이 너무 나빴다. 결국 마지막으로, 우리는 원래 문맥의 분위기만 반영하기로 했고,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완벽한 번역은 아니었지만, 시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최소한 원래 문맥에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역자 주: 원어는 대만 방언이지만, 번역판 영어는 시적인 문법이 사용되었을 뿐 이해하기 쉬운 현대 영어로 되어있다.

연극 대본 작성하기

게임의 세 번째 장에서는 이야기가 고조됨에 따라, 가족과 연인에 대한 레이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서술이 필요해졌다. 우리는 게임플레이에 연극적 요소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대본은 중국 현대 시의 구조로 작성됐고, 고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번역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대로 번역하는 대신 약간의 변경을 가해 행간을 강조하고, 레이의 감정을 더 전달하려 했다. 

이것은 레이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첫 줄의 원어는 "棕色的玻璃瓶(갈색의 유리병)"으로 알코올의 은유다. 영어판에서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가 레이의 가정이 무너진 이유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구역질 나는 색깔의 유리컵"으로 번역했다.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레이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사례 2. 구어 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그저 의미가 같다고 해서 훌륭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좋은 번역은 원본의 작업 환경과 독자들의 배경도 고려해야한다. <반교>의 배경이 1960년대 동아시아라는 점을 고려하면서도, 오늘날 서양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했다.


학교 용어

웨이와 레이가 함께 교실로 돌아 왔을 때, 웨이는 그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學姊(Xue Zi. 쉐즈. 여자 선배를 지칭하는 말)"라고 부른다. 서구권에서 학생들은 나이 차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성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 국가에는 일반적인 선후배간 존칭 사용이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첫 번역판에서 "學姊"는 "Senpai"(센파이. 선배의 일본어 독음.)로 번역됐다. 의미는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일본어에서 빌린 말일뿐더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도 아니었다. 이 점을 고려해, 존중의 의미를 전달하는 훨씬 일반적인 말인 "Miss"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비속어

어느 장면에서, 웨이는 비속어 "靠 (Kao, 카오.)"를 입밖으로 내뱉는다. (역자 주: 놀랄 때 단말마로 외치는 비속어로 영어의 "What the heck"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원래 의미를 다 담은 "What the heck"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말은 너무 현대적인 느낌을 줬고, <반교>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이 말은 "What...!"으로 바뀌었다. 구두점을 추가해 웨이의 놀라움을 보다 중립적으로 강조했다.

사례 3. 새 번역어 만들기, 기본 번역어의 사용, 그리고 음역


<반교>의 중국어판에는 대만 민속 문화와 지역 종교에서 파생된 수많은 어휘가 들어 있다. 일부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새로 번역어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우리는 발음에 기초해 음역할지, 아니면 의미에 기초해 의역할 지도 고민해야했다.


고민한 끝에 우리는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대만 문화를 전혀 모르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였다. 이 기준은 우리의 전략 설정과 번역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됐다.


기존 번역어 사용

기존 번역어를 게임에 적용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봤다. "사람들이 과연 이 말을 알고 있을까?" 기존 번역어가 문화적 배경이나 언어와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이해되는 말이라면, 플레이어들 역시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불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이나 "금강경" 같은 말들은 아무런 변환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새 번역어 만들기

게임 중 플레이어는 종종 망량과 부딪힌다. 이전 단락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민속 설화에 등장하는 식인귀에서 영감받은 괴물인데, 영어로는 "Moryo"로도 알려져 있다. 발음하기 힘들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Moryo" 대신, 우리는 이 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Lingered" (남은 자들)라는 새 번역어를 만들었다. 이승에 '남아있는' 괴물들이기 때문이다.

음역하기

어떤 말들은 너무 문화적으로 고유한 말이라, 적당한 번역어도 없고, 한두 개 단어로 그 의미를 다 전달하기 힘들다. 이럴 때 최후의 수단은 발음을 기준으로 음역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음역하면 그 말을 읽는 것만으로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는 특정한 문화적 의미를 담은 단어의 경우, 추가 설명을 보충해 음역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예를 들어 "흑백무상"의 경우 그냥 "HeiBai Wuchang"이라고 쓴 뒤 일지를 통해 의미를 보충했다. 일지 속 그림과 설명을 통해 플레이어가 중국 무속 신앙에서 죽음의 사자인 "흑백무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길 바랐다.

# 간단히 말해서


여기까지, <반교>의 현지화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실수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써보았다. 게임을 개발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할 것과 고려해야할 세부 사항이 많을 줄은 몰랐다. 이 모든 여정을 통해 얻은 하나의 큰 교훈은, 언제나 플레이어의 반응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매번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가 실수를 바로잡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반교>가 출시되고 나서, 우리는 플레이어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일부 플레이어는 퍼즐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니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면 좋겠다고 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문법 오류를 지적하면서 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출시 버전의 영어 번역 품질이 데모 버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무엇보다 우리를 깊이 감동시킨 것은 한 서양 플레이어의 반응이었다. "우리가 더 이상 저런 시대에 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정확히 우리가 기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반교>를 통해 어떤 메시지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의 플레이어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스튜디오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 <반교>는 레드 캔들 게임즈의 시작을 알렸다.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 작업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느꼈다. 또 우리가 받은 피드백은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영감을 주었다. 앞으로도 최고의 게임을 위해 노력하고, 더 몰입할 수있는 게임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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